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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최소아는 응급전화를 걸고 난 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옆에 서류 한 부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들어 대충 훑어보더니, 가볍게 비웃었다. 지금이 법이 살아 있는 사회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강진혁은 아내를 없애고 자기 앞길을 트는 데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크게 다쳐 입원한 지 사흘.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법원에 기소까지 올려놓았다. 고소 이유는 ‘유지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최소아는 황당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이 저렇게 당당하게 문서가 되어 나오다니. 저 사람들은 밤에 어떻게 편히 누워 잘 수 있을까 싶었다. 만약 ‘남의 가정 깨는 여자’가 정식 직업이라면, 유지아는 어린 나이에 이미 ‘연구원급’ 칭호를 달았을 것이다. 최소아는 되레 그 ‘주거 침입 상해’ 누명을 유지아에게 씌웠고, 그녀가 자신과 강진혁의 부부 공동재산을 강제 반환해야 한다고 법원에 청구해놓았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범인이 유지아라고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게 이 세계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었다. 하버시아의 여론은 결국 최소아 편이 되었고, 그녀를 향했던 고소는 금방 취하되었다. 그날, 첨사항에서 한 배심원과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순간, 길가 가로등 아래 세워진 노란·흰색 이중 번호판 람보르기니가 눈에 들어왔다. 강진혁은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조수석 문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타.”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어디로요?” 최소아는 담담했다. “며칠 뒤면 아버지 생일이야. 집에 데려다줄게.” 아마 최기철의 지시였을 것이다. 장인과의 관계를 유지해 이 결혼을 계속 이어가라는 뜻. 최소아는 짧게 웃었다. 그 집 도대체 얼마 만에 돌아가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강진혁이 조수석 문을 열었지만, 최소아는 자연스럽게 그를 스쳐 지나 뒷좌석에 올랐다. “조수석에서 다른 여자 귀걸이라도 만지면 큰일 나요. 제 피부 얼마나 예민한지 알잖아요? 그런 값싼 것에 닿으면 바로 알레르기 나요. 그리고 차 안에 남아 있는 그 여자 향수 냄새도요.” 최소아는 창문을 내려 바람을 들였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말은 날카롭게 박혔다. 강진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빈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항령해교를 지나 양성으로 향했다. 최소아가 초등학교에 올라간 뒤, 부모는 양성으로 이사했고 그녀만 하버시아에 남겨졌다. 바닷바람이 스며와 가슴속 어딘가를 쓸어내렸다. 5년 전, 아마 자신이라는 ‘버팀목’을 놓칠까 두려웠던 그는 두 도시를 오가며 부모를 설득해 딸을 자신에게 시집보내 달라고 매달리듯 요청했었다. 그때 그의 마음은 복잡했을 것이다. 멀어지면 행복에서 멀어지고, 다가오면 고통에 더 가까워지는 관계. 이틀이 걸린 이동 끝에 차는 황량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최소아는 문을 밀고 들어가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거실로 곧장 걸어갔다. “엄마, 저 왔어요.” 백발의 여자가 소파에 앉아 비어 있는 눈빛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 누구야? 난 딸 같은 거 없어.” 장서화의 병은 이미 깊어져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최소아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는 다가온 가정부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뒤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의 묘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를 하나 피웠다. 강진혁은 그녀 뒤에서 무슨 감정을 꺾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네 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너희 어머니 일도 왜 한 번도 나한테 말 안 했어? 내가 너희 집 처음 갔을 때 본 사람이 네 새엄마였지? 그래서 네가 그 사람을 ‘아주머니’라고 부른 거구나.” 최소아는 담담하게 웃었다.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구고 발로 눌러 끄자, 비스듬하게 선 꽁초가 마치 향처럼 보였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요하든 말든,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져 있었다. 강진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지 못했고, 최소아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 엄마는 납치돼 온 사람이에요. 저를 낳고 미쳐버렸죠. 그러니 절 딸로 인정한 적도 없어요. 아빠는 나중에 바닥부터 사업을 일으켜 새 아내를 들였고, 저는 빨리 없어지기만을 바라는 사람처럼 굴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저는 아빠의 돈을 나눠 가졌고, 아빠보다 오래 살아서 결국 아빠를 먼저 떠나보냈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언덕에 이르자 발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몸을 돌려 역광 속에서 강진혁을 바라봤다. “강진혁 씨가 절 데리러 왔던 그날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했죠.” 그녀는 숨결마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이번에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유지아 씨를 제게 넘기 우리 이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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