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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

“하늘이 네가 부탁한 거였어? 하늘이 너는 어쩜 이렇게 예쁜 짓만 해? 아주 우리 집의 복덩이가 따로 없어.” 채진숙이 뿌듯한 얼굴로 임하늘을 와락 끌어안았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임하늘은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또 금방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래도 저는 당분간 나가서 사는 게 좋겠어요. 언니가 저를 보면 분명 기분 나빠할 거예요. 저는 저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생기는 거... 원치 않아요.” “절대 안 돼!” 세 명이 동시에 외쳤다. “하늘아, 나는 항상 너를 내 친동생이라고 여기며 살았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애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고!” 임수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채진숙 역시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하늘아. 그냥 딸이 한 명 더 생기는 것뿐이지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이 집에서 나갈 필요는 없다는 소리야.” “앞으로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마.” 임무원이 엄숙한 말투로 얘기했다. 임하늘은 그들이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딸이라 어릴 때부터 다재다능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가문을 도와 세한 그룹과의 계약도 성사하게 해줬으니 그녀를 버리는 듯한 행동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우리 친딸이 어떤 애인지는 아직 몰라도 하늘이보다 뭘 잘하지는 않을 거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도우미가 다가와 임무원을 향해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문이 스르르 열리고 권해나가 역광을 받으며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권해나는 흰색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학생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에 얼굴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미인이었다. 채진숙과 어느 정도 닮은 것이 누가 봐도 임씨 가문의 딸이었다. 임하늘은 권해나의 등장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당연히 못생기고 촌스러운 여자일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채진숙과 임무원도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권해나는 거실에 있는 네 명을 차례대로 한번 훑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해나예요. 부모님을 찾으러 왔어요.” 말투도 담담하고 표정도 침착한 것이 부모님을 찾으러 왔다기보다는 비즈니스를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채진숙은 친딸의 자기소개에 가장 먼저 임하늘 쪽을 바라보았다가 몇 초 후에야 다시 고개를 돌려 친딸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얼른 이쪽으로 와서 앉아.” “네.” 권해나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임하늘은 권해나의 얼굴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가 그녀의 옷차림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지나치게 예뻐서 잠깐 놀랐지만 명품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저 그런 집안에 입양된 게 분명했다. “언니, 어서 와요.” 임하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들 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권해나가 임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얘가 바로 나 대신 이 집안의 딸로 있었던 애구나.’ “그래요.” “언니, 혹시 제가 싫으세요...?” 임하늘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 권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 그쪽을 싫어하죠?” “이해해요. 제가 언니 대신 이 집의 딸로서 그간 누릴 거 다 누리고 있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겠죠. 정말 미안해요. 제 얼굴 보기 싫으시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갈게요.” 임하늘의 얼굴은 새언니한테 괴롭힘을 당한 신데렐라처럼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임수찬은 그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임하늘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차가운 눈빛으로 권해나를 바라보았다. “너희 둘이 바뀐 건 하늘이 잘못이 아니야. 애먼 애한테 화풀이하지 마.” 갑작스러운 비난에 권해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임하늘 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쪽이 싫다는 말 같은 거 한 적이 없는 거로 아는데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잘 모르겠네요. 다들 저라는 존재가 영 반갑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 거면 이만 가볼게요.” 말을 마친 권해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채진숙이 얼른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시 앉혔다. “해나야,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채진숙은 말을 마친 후 이번에는 임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아, 해나는 너를 이 집에서 쫓아내려고 한 적 없어.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 임하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1초도 안 돼 다시 풀어졌다. “당연히 알죠. 언니, 다시 한번 환영해요. 언니 주려고 선물도 준비했어요. 자요.” 그녀가 탁자에 내려놓은 건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이었다. 권해나는 화장품 세트를 슬쩍 보더니 자기도 미리 준비한 선물을 하나둘 꺼내 들었다. “이건 아빠한테 드리려고 준비한 계월산 찻잎이고 이 하넬 스카프는 엄마 선물이에요.” 사실 임수찬의 것도 있었지만 권해나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에게까지 선물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임수찬은 자신의 선물이 없자 실망한 듯 입을 살짝 삐죽였다. “어머, 이 하넬 스카프는 엄마가 그때 지인을 통해 구매하려고 했는데도 결국 사지 못했던 한정판이잖아요. 그리고 이 계월산 찻잎은 100g에 몇백만 원이나 한다는 그 찻잎이고요. 듣기로 계월산 찻잎은 상위 1% 가문들밖에 구하지 못한다고...” 임하늘은 신이 나서 떠들다가 갑자기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사람처럼 아차 하며 얼른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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