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1년이 또 1년이 흐르고 벚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묘비 앞의 계단은 육정훈의 몸이 닿은 자국으로 반질반질해졌다. 그의 등은 더 이상 곧게 펴지지 않았으며 걸음도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어느 조용한 늦가을 오후 일흔을 훌쩍 넘긴 육정훈은 별장 침실의 크고 차가운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가 잠든 사이 숨을 멈추었다.
육정훈의 얼굴은 유난히 편안해 보였으며 미세하게나마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이마의 주름도 풀리고 입가도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은 것이 마치 평생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드디어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육정훈은 아무 고통 없이 가을 나뭇잎이 땅에 내려앉듯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소식이 퍼지자 세상은 크게 술렁였으며 이 거대한 재벌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알렸다.
육정훈의 방계를 비롯해 그룹의 핵심 법무팀은 그의 사후 정리를 시작했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육정훈의 침실에서 여러 겹의 비밀번호와 생체 인증이 필요해 보이는 두꺼운 금고가 발견되었다.
금고가 열렸을 때 사람들은 다들 말없이 그 자리에 굳었다.
텅 빈 금고 안에는 단 두 가지 물건만 놓여 있었다.
하나는 모서리가 닳고 종이가 누렇게 바랜 서류봉투였는데 봉투 안에는 수십 년 전 발급된 한 병원의 진단서가 있었다.
[환자 이름: 진서인. 진단 결과: 위암 말기. 생존 기간이 한 달을 넘기기 어려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씨들은 여전히 날카롭게 눈을 찔렀다.
또 하나는 짙은 남색 벨벳 상자였는데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여성용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반지는 수십 년 전 유행하던 디자인이었고 잘 보관되어 있었지만 시간의 흔적은 감출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는 차갑게 빛나면서 마치 오래전에 닫혀 버린 이야기를 묵묵히 말해주는 듯했다.
금고 안에는 막대한 채권도, 비밀스러운 지분 문서도, 거대한 재산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섬 몇 개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이 금고에는 오직 한 장의 오래된 진단서와 단 한 번도 건네지 못한 약혼반지만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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