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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관가짜 환관
By: Webfic

제4화

세자빈 안방 수조에는 백란 꽃잎이 가득 뿌려져 있는데 이건 강청연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백란 꽃잎으로 목욕했기에 몸에서도 은은한 꽃 향이 났다. 청이는 세자빈이 목욕하는 걸 시중들면서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어깨를 가볍게 닦고 있다. 이곳은 원래 신혼방으로 빨간 신혼 축하 글이 아직 그대로 온전히 남아있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세자는 단 한 번도 이 방에 온 적 없었다. “마마께서는 피부가 정말 좋으시옵니다. 하얗고 윤기 나며 향긋한 것이 윤고처럼 부드러워 세게 닦으면 혹여 아프실까 봐 조심스럽사옵니다.” “휴, 그러면 뭘 하겠느냐?” 강청연은 발그스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외로움과 상실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가 손꼽아 기다렸던 혼인날 세자는 만취해서 쓰러졌었다. 누구나 다 따고 싶어 하는 덕헌국에서 가장 아픔다운 꽃과 같은 여인이라 세자도 곧 참지 못하고 잠자리를 같이할 줄 알았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자는 자신의 부인을 아예 잊고 사는 듯했다. 강청연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신분과 예의 때문에 감히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최근 이무열이 바깥의 유언비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는지 비밀을 털어놓으며 그녀에게 밖에서 남자를 찾아 하루빨리 회임하고 아이를 낳을 것을 제안했었다. 그녀는 세자빈이자 장래 덕헌국 왕후가 될 자신이 다른 남자한테 몸을 내주어야 하며 그런 일이 아이를 가질 때까지 몇 차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강청연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왕실에 시집온 이상 모든 건 왕권을 우선시해야 했고 동시에 그녀는 연제국 백성들의 운명도 짊어지고 있었다. “청이야, 그 김신재라는 환관과 친하냐?” 강청연의 물음에 청이는 황급히 해명했다. “그다지 친한 건 아니지만 평소 자주 장난을 치면서 저를 농락했사옵니다.” 강청연은 목을 만지작거리며 궁금해했다. “거세한 남자는 여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청이도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만 거세 전에 여색을 너무 밝혀서 아직 그런 마음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사옵니다. 마마, 그자를 내관으로 임명하면 앞으로 자주 만날 테니 조심하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그 정도 배짱은 없을 것이야.” 세자빈한테 감히 눈독을 들이는 환관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강청연은 피식 웃어넘겼다. 허나 그녀는 남자가 질척거리는 게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 다음 날 아침 김신재가 곤히 자고 있을 때 환관 몇 명이 그를 발로 찼다. 민희동의 심복인 말득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너 정말 죽고 싶냐? 민 내관께서 부엌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는데 설거지도 하나도 안 하면 아침밥은 어떡하냐?” 김신재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며 말했다. “3박 3일 동안 갇혀 있었는데 일할 맥이 어디 있겠느냐?” “넌 곤장 맞을 준비나 해라.” 말득이 고자질하러 간 지 한참 지나서 민희동이 씩씩거리며 들어오더니 난장판인 부엌을 보고는 화를 냈다. “너 아주 매를 버는구나.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하다니. 여봐라, 이놈을 끌고 가서 곤장 20대를 쳐라!” “민 내관, 좀 기다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오늘 세자빈마마께서 절 동궁 내관으로 임명할 텐데 지금 저한테 곤장을 때리면 오히려 민 내관 목이 위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신재의 말에 민희동은 껄껄 웃었다. “난 여기서 십여 년 동안 내관으로 있으면서 세자 저하께서 모든 걸 함께했다. 어디 감히 내 자리를 넘보는 것이냐? 네 조상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돕지 않는 한 내 자리를 대신할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그럼 기다려 보시든지요. 세자 저하의 성격은 민 내관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김신재가 웃으며 말하자 민희동은 조금 망설여졌다. 평소에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하인을 죽이던 세자가 어제는 김신재의 목숨을 살려주었었다. “먼저 나뭇간으로 끌고 가서 감금해라. 아침 식사가 다 준비되면 곤장을 때릴 것이다!” 말득은 사람 몇 명을 데리고 김신재를 나뭇간으로 끌고 가서 감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따가 내가 직접 때릴 것이다. 호되게 맞을 준비를 하고 있거라. 어디 너 따위가 내관 자리를 넘봐!” “방금 한 말 잘 기억하거라. 이따가 네가 날 안 때리면 내가 널 때릴 것이니.” 김신재도 맞받아쳤다.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나 보자!” 동궁은 진시에 반드시 아침 식사를 시작해야 하기에 민희동은 모든 환관과 궁녀들을 전부 부엌으로 불러 일손을 돕도록 했다. 오늘은 조정 대신들을 접대해야 하기에 아침 식사 준비가 평소보다 더 복잡했다. 그 외에도 동궁을 지키고 있는 300명 우림군과 50면의 문객 그리고 100명의 환관과 궁녀들의 아침까지 준비하려면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일을 다 마칠 때쯤 민희동은 지쳐서 숨을 헐떡거렸으며 밤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김신재를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해가 거의 중천에 뜨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잖아. 감히 날 속여? 오늘 어디 한번 호되게 맞아봐라.” “말득아, 김신재를 끌고 와서 곤장을 쳐라.” “네!” 말득은 민희동의 지시에 흥분하며 사람을 데리고 가서 김신재를 끌고 와서 나무 의자에 엎드리게 했다. 김신재는 속으로 세자빈의 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했다. “민 내관, 잘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주상 전하의 평은 진시에 도착할 테니 아마 제 임명 지시도 곧 내려올 겁니다.” “아직도 그딴소리야? 저놈을 쳐라!” 말득이 손에 침을 뱉은 후 굵은 나무 막대기를 쥐고 있는 힘을 다해 김신재의 엉덩이를 내리치려는 순간 청이가 다급하게 달려와서 제지했다. “멈추십시오!” 청이는 세자빈의 몸종이라 민 내관이라 할지라도 쉽게 대하지는 못했다. “청이야, 너 혹시 이놈을 편들려는 것이냐?” 민희동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그게 아니라 주상 전하께서 쓰신 평이 도착하여 세자빈마마께서 두 분이 같이 나가서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청이의 말에 민희동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나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민희동은 궁에서 온 환관에게 몰래 주상 전하의 반응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 그를 보내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김신재가 무슨 자격으로 같이 가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김 환관.” 청이가 김신재를 부르자 민희동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김신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안도했다. “마침 잘 왔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제 엉덩이가 고생했을 겁니다.” 청이는 눈을 흘기며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쌤통입니다!” 김신재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득에게 말했다. “이따가 돌아와서 제일 먼저 네 엉덩이부터 때릴 것이다. 너 이 자식, 딱 기다려라.” 말득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민희동만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빠르게 동전으로 향했다. 세자는 평소 이곳에서 귀한 하객을 맞이하고 중요한 일을 상의했으며 당연히 접대도 여기서 했다. 오늘 접대할 하객은 예전에 세자의 부하들이었던 진북대장군 진원효와 진원효 휘하의 심복 두 명이다. 그들은 연제국 북쪽 국경에서 20만 병력으로 북정국을 방어하고 있으며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와 군사 상황을 보고하는 김에 연제국 국왕에게 세자빈의 말을 전할 예정이었다. 강청연은 김신재가 들어오자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세 장군님께 술과 차를 따르거라. 먼 길 오시느라 지치셨으니 잘 모셔야 한다.” “네, 세자빈마마!” 이무열은 김신재를 힐끗 쳐다보고는 영리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안심했다. “진 장군, 아바마마께 건의할 수 있으신지요? 마침 장인어른을 뵈러 부인과 함께 연제국으로 갈 예정인데 가는 김에 군대를 이끌고 북정국을 평정하려고 합니다.” 이무열은 전쟁을 명분으로 연제국에 오래 머물면서 세자빈이 회임할 때까지 있다가 경성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진원효는 이무열이 전공을 세우고 싶어 한다고 오해하여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신이 주상 전하께 아뢔보겠사옵니다. 주상 전하께서 세자 저하를 전장에 보내지 않으시는 건 저하의 건강을 걱정해서이옵니다.” 지난번 중상을 입은 후로 덕종이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 이무열은 기분이 안 좋았다. “저는 몸이 튼튼하여 80근짜리 활도 여전히 쉽게 당길 수 있습니다.” 이무열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져서 50근짜리 활도 힘겹게 당길 정도인지라 강청연만이 이무열이 허풍을 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 대내총관 복만이 덕종의 평이 쓰인 과제를 들고 웃으며 들어왔다. “경하드리옵니다. 세자 저하!” 이무열은 깜짝 놀라 얼른 일어나 맞이했다. 전에는 궁중의 환관을 보냈었는데 이번에 복만이 직접 왔다는 건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어찌 서 총관이 직접 오셨소?” “주상 전하께서 크게 기뻐하시면서 전하께 몇 마디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복만이 웃으며 대답하자 이무열은 내심 기뻐하며 얼른 자리로 안내했다. “같이 식사도 하고 양탕으로 몸을 좀 녹이시오.” 이무열은 자리에 있는 세 장군한테 자신이 여전히 주상이 가장 총애하는 세자임을 증명하고 앞으로 자신을 계속 지지해 줬으면 하는 사심으로 복만을 만류했다. 청이는 서둘러 난롯가에 가서 복만을 위해 양탕을 담으면 김신재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어제 지은 시가 정말 주상 전하를 기쁘게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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