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엄마, 감옥도 갔다 왔으면서 이혼까지 하겠다고요? 남들이 뭐라 생각하겠어요?”
박강훈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이혼 얘기에 박진우마저 크게 놀란 듯했다.
성유리가 불쌍한 척, 억울한 척하면서 배상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박씨 가문에 시집온 건 엄청난 금액의 예물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혼을 요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3년 전 성유리는 그들 부자 옆에 남기 위해 온갖 애를 썼었다. 게다가 감옥살이도 3년이나 했다.
결국에는 달래 달라고 강요하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박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강훈이 말이 맞아. 박씨 가문을 떠나면 어디 갈 수 있는데? 성유리, 계속 이렇게 억지 부리면 너만 망신당해.”
하지만 성유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 기사가 이상한 눈으로 훑어보아도 개의치 않았다. 택시에 타기 전 다시 박진우 부자를 쳐다보았다.
“그건 다 내 일이에요.”
성유리가 말했다.
“이혼 합의서 시간 내서 보낼게요. 이혼하면 양아현 씨가 두 사람의 아내와 엄마가 되겠네요. 축하해요.”
그녀의 말투는 딱딱하고 냉랭했다. 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삐쩍 마른 성유리의 뒷모습을 보던 박진우는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할아버지랑 아현이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데리러 온 건데 감히 나한테 이혼을 요구해? 예전의 성유리였더라면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일 텐데. 두고 보겠어.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가 뭘 할 수 있는지.’
...
성유리는 택시에 올라탔다. 마침 택시 안의 TV에서 양아현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양아현 씨, 지금 최고의 여배우가 되셨는데 결혼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영상 속 양아현의 시선이 무대 아래의 박진우 부자에게 향하더니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전 지금 가진 모든 것에 만족해요. 가장 힘들었던 지난 3년 동안 두 남자가 저의 곁에 있어 줬거든요.”
서로를 바라보는 세 사람은 그야말로 행복한 한 가족이었다.
이 동네에서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막 나오셔서 이분이 누군지 모르시죠? 배우인데 양아현이라고 해요. 대영 그룹의 두 부자가 양아현의 남편과 아들이에요. 양아현의 생일날에 박진우 대표가 밤새 불꽃놀이를 해줬지 뭐예요? 저 세 식구는 정말 인물도 다 훤해요.”
성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몸이 하도 깡말라서 옷이 다 커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TV 속의 양아현과 박진우 부자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살짝 갈라지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물이 훤한 건 모르겠고 그냥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 같은데요?”
성유리가 감옥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은 양아현이 승승장구하는 걸 도와줬고 그녀와 함께 불꽃놀이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들 부자의 무정함에 익숙해져 감정이 무뎌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씁쓸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말에 운전기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교도소 앞에서 태운 사람인 데다가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앙상한 모습을 보고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성유리는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후 택시가 성유리의 명의로 된 집 앞에 멈췄다. 집으로 들어가 돈을 찾아 운전기사에게 준 다음 생활용품을 사러 마트로 갔다.
3년 전 그녀가 감옥에 들어간 후 그녀의 명의로 된 자산이 전부 동결되었다. 이젠 출소해서 동결되었던 자산도 풀렸고 그 돈으로 당분간은 생활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은 탓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직원이 손을 들어 바코드를 찍는 동작에도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했다.
“손님, 괜찮으세요?”
직원이 걱정스럽게 묻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괜찮았다. 단지 감옥에서 너무 많이 맞아 트라우마가 생겼을 뿐이었다.
마트에서 나오자마자 성유리의 절친인 진미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유리가 출소했다는 소식에 진미연은 몹시 흥분했다.
“원래 미리 귀국하려고 했는데 태풍 때문에 계속 못 들어갔어. 지금 박씨 저택이야, 아니면...”
“윈드 타워에 있어.”
그러자 진미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우 씨가 너 데리러 안 갔어? 그래도 부부인데...”
“미연아, 나 그 사람이랑 이혼하려고.”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꽉 쥐었다.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부터 진미연은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다. 예전에 남편과 아이가 성유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이혼을 응원한다고 몇 번이고 성유리를 설득했었다.
하지만 성유리는 박진우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렸다.
“감옥에서...”
진미연은 대체 무슨 일을 겪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첫해에는 성유리를 보러 자주 갔었다. 그런데 나중에 해외로 파견되어 전쟁 관련 취재를 하게 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박진우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먼저 이혼을 꺼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었던 걸까?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 고통과 무감각함이 스쳤다.
진미연이 화제를 돌렸다.
“네가 들어간 후에 네 시어머니가 구양 정원을 차지하고 관광 명소로 만들어버렸어. 그리고 양아현은... 아무튼 나 곧 들어가니까 자세한 얘기는 그때 다시 해줄게.”
성유리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결혼한 다음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감옥에 간 후 성유리의 어머니는 성유리 때문에 매일 눈물로 지새다가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감옥에 있던 그녀는 박진우에게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었다.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결국 들려온 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젠 재산마저 빼앗겼다.
성유리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가 감정을 꾹 눌렀는지 다시 차분해졌다.
3년간의 감옥 생활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감옥에서 온갖 고통을 받았던 그녀가 모든 걸 되찾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