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30분 후, 병실 안.
사각, 사각.
고요한 병실 안, 사과 껍질을 벗겨내는 칼날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도현우는 침대 곁에 앉아 칼등을 손가락으로 지탱한 채, 끊어지지 않는 붉은 사과 껍질을 나선형으로 길게 늘어뜨리며 쓰레기통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심유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칼날의 깊이를 완벽하게 조절하는 그의 손길은 마치 정교한 예술 작품을 조각하는 듯 보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칼을 든 쪽은 언제나 그녀였으니까. 늘 조심스럽게 사과를 깎아 한입 크기로 정성껏 잘라 고태준 앞에 대령했었고 가끔 껍질이 끊기기라도 하면 고태준의 무심한 조롱을 견뎌야 했었다.
“아 해봐.”
잘 깎인 사과 조각이 입가로 내밀어졌다.
심유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직접 먹으려 손을 뻗었다.
“제가 할게요.”
그러나 손을 채 올리기도 전에 그의 단단한 손이 그녀를 부드럽게 눌러 제지했다.
도현우는 사과를 넘겨주는 대신 다시금 과육을 밀어 넣어 그녀의 입술에 바짝 갖다 댔다.
“손에 바늘 꽂혀 있으니까 움직이지 마.”
낮게 깔린 그의 음성에는 부드러운 다정함과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차가운 과육이 뜨거운 입술에 닿는 순간, 미세한 전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 길고 곧은 검지가 그녀의 입술 끝을 무심히 스쳐 지나가며 지문 끝에 맺힌 희미한 굳은살의 감촉이 생경하게 전해졌다.
심유나는 숨을 들이켜며 몸을 굳혔다.
“착하지.”
도현우는 아이를 달래듯 낮게 속삭였으나, 안경 너머의 시선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백하윤 곁엔 늘 누군가 붙어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태준이가 한창 바쁠 거야.”
한창 바쁠 거라는 한마디가 아물지 않은 심유나의 상처를 헤집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입을 벌려 사과를 베어 물었다.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지만 단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종적인 그녀의 모습에 도현우의 울대뼈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다시 한 조각을 베어 그녀에게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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