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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하은서가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심예원은 곧장 법률사무소로 향했다. 그녀는 하도겸이 작성해 둔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며 이 서류가 법적으로 유효한지를 물었다. 하도겸은 과거 결혼 당시 계약 결혼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었었다. 바로 언제든 이혼을 요구할 수 있지만 심예원은 어떤 이유로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조항이 담긴 합의서는 결혼 전부터 작성되어 있었고 날짜는 빈칸이었지만 하도겸의 서명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법률상담 결과 이혼 합의서가 유효하다는 답을 들은 뒤, 심예원은 망설임 없이 사인하고 변호사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처리가 끝나는 대로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 그녀는 말없이 별장의 주소가 적힌 메모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콧등이 시큰해지자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하도겸을 사랑했다. 결혼 후에도 노력했고 함께할 미래를 꿈꾸기도 했지만 하도겸이 반복해서 외면하고 냉담하게 돌아설 때마다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식어갔다. ‘소혜진이 돌아왔으니 그만할 때도 됐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마치고 나오던 심예원은 상가 1층 로비에서 또다시 하도겸과 소혜진을 마주쳤다. 소혜진은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화려하고 당당하며 섹시한 매력까지 풍겼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하도겸과 팔짱을 끼고 있었고 얼굴엔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도겸은 한 팔로 그녀의 아이를 안고 있었고 눈에는 넘칠 듯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심예원은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언젠가 그녀도 하도겸과 함께 딸아이를 데리고 이렇게 함께 쇼핑하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터질 듯한 가슴을 억눌렀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별장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조용히 노트북을 열었다. 정성껏 준비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지원하고자 마음먹었던 아벨렌 기업 몇 곳에 보냈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직후, 하도겸은 그녀를 수행비서가 아닌 비서팀 소속 직원으로 좌천했었다. 그 때문에 퇴사 절차는 간단했고 업무 인수인계만 끝나면 언제든 나갈 수 있었다. 인사팀을 다녀온 심예원은 자리에 돌아와 조용히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쪽에서 발소리와 함께 과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심예원이 고개를 들자, 몇몇 임원들이 하도겸과 소혜진을 에워싼 채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혜진은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조금 전에 봤던 도발적이고 화려한 스타일과는 달리 단정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차림새였다. 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사무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하도겸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곁을 지켰고 그녀에게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장면을 마주한 심예원의 가슴이 쿡 하고 아프게 찔렸다. 무의식적으로 하도겸을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예원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예원 씨, 이분은 소혜진 씨, 하 대표님의 여자 친구입니다. 앞으로 예원 씨 업무는 혜진 씨가 맡을 거예요. 예원 씨는 영업팀으로 발령됐으니, 조속히 인수인계 부탁드립니다.” 한 임원이 말했다. ‘하 대표님의 여자 친구?’ 하도겸도 부정하지 않았다. 심예원의 눈가가 시큰해졌고 꽉 쥔 주먹에 힘을 실었다. ‘하도겸은 이렇게까지 서둘러 소혜진을 제자리에 앉히고 싶었던 걸까. 나랑 은서가 상처받든 말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심예원은 다시 한번 하도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도겸이 냉랭한 눈빛을 보내며 그녀를 제지했다. “심예원 씨, 인사이동에 불만이 있다면 직속 상사에게 말씀하세요.” 하도겸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길 바란다는 눈치였다. “혜진 씨가 이 자리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덧붙인 말은, 단지 일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었다. 심예원은 그 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심장 끝에 바늘로 찌르듯 잔잔한 통증이 번졌지만 심예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역시... 단 한 번도 나를 신경 쓴 적 없었어.’ “알겠습니다.” 심예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소혜진과 형식적인 악수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도겸은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곧바로 시선을 소혜진에게로 돌렸다. 그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색은 온데간데없어졌고 남아 있는 건 부드럽고 따뜻한 애정뿐이었다. 심예원과 하은서는 그런 눈빛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은 이렇게 다르구나.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하길 잘했어...’ 그날 저녁, 회사에서는 급하게 회식이 잡혔다. 소혜진의 입사 환영을 명목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심예원은 당연히 참석할 이유가 없었고 조용히 빠지려 했지만 소혜진이 끈질기게 붙잡았다. “예원 씨, 설마... 제가 예원 씨의 자리를 뺏었다고 언짢으신 거예요? 그래서 제 환영회에 안 오시려는 건가요? 저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어요. 다 대표님이 결정하신 일이에요. 오늘 입사 첫날이라... 예원 씨랑 더 친해지고 싶어요. 아직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같이 가줘요... 네?” 그녀 말 속에 담긴 의도를 단번에 읽어낸 심예원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전 그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요. 죄송해요.” “남편분은요? 하루쯤 부탁해도 되잖아요!” ‘남편?’ “남편이 없어서요.” 심예원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가슴 깊은 곳은 여전히 아팠다. 그는 그녀를 한 번도 아내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삶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세계에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뭐... 미안해요. 몰랐어요...” 소혜진은 짧게 사과했지만 물러날 기색은 없었다. 기어이 그녀를 데려가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아이도 같이 데려오면 어때요? 저희 아들도 올 거예요. 또래 친구끼리 같이 놀 수 있잖아요?” 심예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우리 아이는 이런 자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그 순간 총총총 발소리가 들리더니 심예원의 품으로 달려왔다. “엄마, 오늘은 아저씨가 데리러 왔어요.” 하은서는 환하게 웃으며 심예원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여기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심예원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은서가 어느 어린이집에 다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데리러 간 거지?’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도겸이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소혜진에게 머물러 있었고 심예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도겸아, 예원 씨 딸이야?” 소혜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유준이 데리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어. 예원 씨 딸이야. 회사에 몇 번 데리고 온 적 있었어.” 하도겸은 마치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소개하듯 말했다. 그 말에는 거리감이 뚜렷하게 배어 있었다. 하은서는 무언가 말하려다 멈칫하며 심예원을 쳐다보았다. 심예원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고 아이는 풀이 죽은 채 시선을 떨궜다.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도겸 씨, 예원 씨도 남편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신대. 예원 씨를 영업팀으로 보내는 건 너무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혼자 애 키우는 것도 벅찰 텐데...” 소혜진의 말에 하도겸은 잠시 심예원을 흘긋 보더니 시선을 다시 소혜진에게 돌렸다. “네 말대로 할게.” 소혜진은 눈빛을 부드럽게 하며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은서는 조용히 심예원의 옷자락을 꼭 쥐더니 그녀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엄마, 아저씨가...” 그 순간, 소유준이 달려와 하도겸의 다리를 안았다. “삼촌, 안아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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