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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잠시 망설이던 하도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은서는 눈물을 닦으며 환하게 웃더니 곧장 책상 앞으로 달려가 초대장 한 장을 들고 왔다. “초대장이에요! 주소랑 시간은 여기에 있어요. 아저씨, 절대 늦으면 안 돼요!” 거듭 신신당부하는 아이의 모습에도 하도겸은 말없이 초대장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엄마! 아저씨가 온대요!” 하은서는 폴짝폴짝 뛰며 달려왔다. “엄마도 들었어.” 하은서는 하도겸을 좋아했다. 그가 한마디라도 해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정도로 아주 많이 좋아했다. 그날 밤, 하은서는 한동안 방 한쪽에 던져뒀던 곰 인형을 다시 꺼내 와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오늘 받은 레고 자동차도 그 곰 인형 옆에 가지런히 두었다. 심예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겸 씨가 정말 와줄까? 차라리 처음부터 거절했다면 은서도 괜한 희망을 품진 않을 텐데...’ 하도겸은 집을 나선 후 아무 생각 없이 하은서에게서 받은 초대장을 들고 소혜진을 찾아갔다. 우연히 초대장을 보게 된 소유준은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하도겸과 소혜진이 동시에 묻자 소유준은 초대장을 꼭 쥔 채 훌쩍이며 말했다. “하은서가 반 친구들을 다 초대했는데... 저만 초대 안 했어요!” 소혜진이 아이를 안으며 초대장을 힐끔 보고는 달래기 시작했다. “유준아, 울지 마. 은서가 이번에 초대하지 않은 건 아마 유준이가 그동안 은서를 서운하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 유준이가 먼저 예쁘게 사과하면 다음번엔 꼭 초대할 거야.” “싫어요! 나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단 말이에요. 나도 그날 생일파티 할래요! 나도! 나도 할 거예요!” 소유준은 소혜진 품에 얼굴을 묻고는 거의 숨넘어가듯 울어댔다. “네 생일은 그날이 아니잖아.” “생일파티라고 안 해도 돼요! 엄마, 제발... 저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 “유준아, 그만 고집부려...” 소혜진은 어떻게든 달래보려 했지만 아이는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도 덩달아 눈물을 글썽였다. “울지 마. 삼촌이 해줄게.” 하도겸이 소유준을 안으며 말했다. “같은 날 파티 하자. 친구들 다 초대해서.” “삼촌, 진짜예요? 진짜로요?” 소유준은 눈물을 닦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하도겸을 올려다봤다. 하도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소유준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목에 달라붙었다. “삼촌 최고!” 심예원과 하은서는 하도겸의 결정을 알지 못한 채 생일파티 준비에 한창이었다.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예원은 하은서와 함께 어린이집 퇴소 절차를 마쳤다. 집에 돌아온 뒤로 하은서는 계속 시계를 바라보았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심예원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하도겸이 또다시 약속을 어기면 어쩌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아침 그녀는 하도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파티 오후 5시부터니까 늦지 마.] 이번엔 답이 빠르게 왔다. [알았어.] 심예원은 옆에서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하은서를 바라보며 조금 안도했다. ‘도겸 씨가 정말로 와준다면... 그래도 떠나야 할까?’ 점심을 먹은 뒤, 심예원은 하은서와 함께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고 딸과 함께 풍선과 리본을 달며 호텔룸을 꾸몄다. “엄마, 아저씨 진짜 올까요?” 하은서도 슬슬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고 틈날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심예원은 아침에 받은 하도겸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알겠다고 답장 왔어.” 하은서는 금세 환하게 웃더니 다시 풍선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답게 금방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 풍선으로 방 안을 다 꾸몄을 때쯤 심예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 학부모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은서 어머님, 너무 죄송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은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심예원은 웃으며 괜찮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곧이어 다른 학부모들의 연락이 줄줄이 이어졌다. “엄마... 친구들... 다 안 오는 거예요?” 하은서도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괜찮아요. 아저씨만 오면 돼요. 은서는 엄마랑 아저씨만 있으면 돼요. 가족끼리 생일 보내고 싶었어요.” 그 말에 심예원은 가슴이 저릿했고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예원은 서둘러 하도겸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번엔 아무런 답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한 시각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예원이 무심코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순간 소혜진의 SNS 게시물이 새로 올라왔다. [유준이의 입학을 축하하며 도겸 씨가 준비해 준 파티. 정말 고마워. 유준이가 너무 행복해했어.] 사진 속엔 반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하도겸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심예원의 손에서 휴대폰이 툭 떨어졌다. ‘오늘이 은서 생일인 걸 뻔히 알면서도...’ 하은서가 다가와 바닥에 떨어진 폰을 주워들었지만 사진을 보고 나서 한참 말이 없더니 이번엔 울지도 않았다. “엄마, 우리 밥 먹어요.” 하은서는 휴대폰을 조용히 식탁 위에 내려놓고 준비된 생일 케이크를 자기 앞으로 당겨왔다. “엄마, 촛불 불래요!” 심예원은 숨이 턱 막힐 만큼 아팠다. 가슴이 저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케이크에 촛불을 꽂고 방 안의 불을 껐다. “아저씨가 지금처럼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고... 저는 엄마랑 영원히 같이 살 거예요.” 하은서의 작은 목소리에 심예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촛불이 꺼지자 그녀는 얼른 눈물을 닦고 아이를 향해 애써 웃었다. “얼른 먹자.” “엄마, 이제 생일은 엄마랑만 보낼래요. 케이크 먹고 나서... 떠나요.” 하은서는 케이크를 한 입 먹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심예원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은서야, 울지 마. 앞으로 엄마가 아빠 몫까지 사랑해 줄게.” 이제 하도겸에게 남은 기회는 없었다. 심예원과 하은서도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그날 밤, 심예원은 하은서와 함께 짐을 싸고 별장을 떠났다. 두 사람은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했고 다음 날 새벽 아벨렌으로 향했다. 탑승 직전, 심예원은 하도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도겸 씨, 남은 인생도 행복해야 해.] 심예원은 핸드폰을 끈 후, 하은서의 손을 꼭 잡고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하도겸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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