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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수작

하지연은 소희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소희는 물을 들고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예전에 의술을 배운 적이 있고 침술도 배웠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씨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뻗어 하지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우리 지연이를 대신해 사느라 우리 지연이가 겪어야 했던 걸 네가 겪는구나. 참으로 힘들겠어.”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연은 싱긋 웃었다. 적어도 더는 고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제 원씨는 그녀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당시 원씨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한없이 차가운 표정을 했었다. 원씨가 말했다. “나는 내 딸을 위해 복수할 것이다.”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엄청난 증오가 느껴졌다. 앞으로 며칠 동안 그들은 절대 정승 댁 사람들에게 살해당하지 말아야 했다. 청하원에는 시녀 두 명이 있었는데 소희는 하지연의 시중을, 수옥은 원씨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나 수옥은 오만한 사람이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하지연은 수옥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앞으로는 수옥을 조심하도록 하세요.” 하지연이 당부했다. “알겠다. 이만 자거라.” 원씨는 하지연에게 약을 발라준 뒤 말했다. 하지연은 너무 피곤했고 잠기운이 몰려와 금방 잠이 들었다. 원씨는 침상 옆에 앉아 하지연의 고른 숨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하지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다가 상처가 있는 곳을 쓸어보았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원씨는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다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눈앞의 이 아이가 자신의 딸이 겪었어야 할 고통들을 대신 겪는 걸 보는 것도 괴로웠다. 사실 죽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이틀 동안 아무도 두 모녀를 찾지 않았다. 덕분에 하지연은 조용히 상처를 치료하며 금침술을 연구할 수 있었다. 원씨는 하지연이 궁에서 홍화를 마셨다는 걸 알게 되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은 인생을 망친 것과 다름없었다. 원씨 본인은 인간 말종인 하종수와 혼인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의 모든 사내들이 하종수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지연이 부디 본인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셋째 날 아침, 수옥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씨, 대부인께서 아씨를 찾으십니다.” 하지연은 서책을 내려놓고 원씨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대부인께서 사람을 시켜 나를 부른 것이냐?” 하지연의 질문에 수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 밖으로 나가자마자 옥자 아주머니께서 다가와 저를 보시더니 대부인께서 아씨를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머니가 다른 말은 하지 않더냐?” 하지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셋째 날인 오늘은 가장 중요한 날이다. 만약 그들이 오늘 손을 쓰려고 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네.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러면 한 번 가보겠다.” 원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함께 가마.” 수옥이 말했다. “마님, 옥자 아주머니는 아씨만 부르셨습니다.” 하지연이 원씨를 달랬다. “어머니, 괜찮습니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원씨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지연아, 조심해야 한다.” 수옥은 옆에서 그 말을 듣더니 웃었다. “마님, 대부인께 안부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뿐인데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하지연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됐다. 너는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이곳 청소나 하거라.” 수옥이 공손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보시지요.” 하지연은 수옥이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옥에게 일을 시키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성의 없이 대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수옥은 그녀의 말에 토 달지 않고 공손히 대답했다. 하지연은 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소희는 하지연의 시녀였기에 하지연이 외출할 때 소희도 당연히 하지연을 따라가야 했다. 대부인의 처소에 도착하자 문 앞에 하인 몇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는데 하지연을 보자 다들 건방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부인은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처소에 하인을 많이 두지 않았었고 오늘처럼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경우는 드물었다. 셋째 날에 드디어 손을 쓰려는 것 같았다. 옥자는 문 앞에 서 있다가 하지연을 보더니 음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씨, 안으로 드시지요.” 하지연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방 안에도 사람 여럿이 있었다. 대부인은 정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열다섯, 열여섯쯤 돼 보이는 시녀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하종수와 영용부인은 대부인의 옆에 앉아 음침한 얼굴로 하지연을 바라보았다. 특히 영용부인은 하지연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혜원은 영용부인의 옆에 서서 표독스러운 눈길로 하지연을 바라보았다. 하혜원은 천으로 귀를 감싸고 있었는데 붕대가 핏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부인을 뵙습니다.” 하지연은 앞으로 나서며 예를 갖추었지만 사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를 상대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인은 담뱃대를 들고 옆의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곧 관세음보살의 탄신일이다. 너는 큰 죄를 지었으니 불경을 베껴 써서 죄를 씻거라.” 탁자 위에는 종이와 관음경이 놓여 있었다. 하지연은 천천히 걸어갔지만 사실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하지연은 자리에 앉은 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혼례식 날 하지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파혼장을 보여주었다. 하종수는 자신의 부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는 죄를 씻으려면 반드시 원씨가 다른 사내와 사통했다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파혼장 사건을 설명할 수 있었다. 현재 청하원 쪽에는 수옥과 원씨만 있었고 소희와 하지연은 이곳에 있었다. 밖에 수많은 사람들을 세운 이유는 하지연이 이곳을 벗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연은 그런 생각이 들자 매우 초조했다. 청하원 쪽에는 수옥이 손을 썼을 것이고 대부인 쪽에 옥자도 없는 걸 보니 분명히 뭔가를 꾸몄을 것이다. 하지연은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대부인의 계략을 간파했다는 사실을 대부인에게 들켜서도 안 되었다. 하지연은 잠깐 침묵하다가 갑자기 배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윽, 저 배가 아픕니다. 대부인, 잠깐 뒷간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인은 덤덤한 얼굴로 하지연을 힐끔 보았다. “참거라.” 하지연은 쭈그려 앉으면서 대답했다. “참기 힘듭니다. 어머, 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대부인 처소에 있는 뒷간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대부인은 하지연이 정말로 괴로워하는 것 같자 그녀가 이곳에서 쌀까 봐 걱정되어 옆에 있던 연옥에게 분부했다. “지연이를 데리고 뒷간에 가거라. 잘 감시해야 한다.” 연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연은 배를 움켜쥐고 밖으로 나가면서 연옥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연옥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하지연을 힐끗 본 뒤 말없이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 있던 소희는 하지연이 나오자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하지연이 따라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뒷간은 처소의 오른쪽 뒤편에 있었다. 그곳은 하인들만 쓰는 곳이었고 주인이 쓰는 곳은 더 안쪽에 있었다. 하지연은 안으로 들어간 뒤 연옥에게 말했다. “여기 종이가 없는데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 연옥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무슨 요구가 그렇게 많습니까?” 하지연은 울상을 하며 말했다. “저도 여기에 종이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악취를 풍기며 대부인을 다시 만나러 갈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연옥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천박한 것일수록 요구가 많다더니. 자기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것.”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씩씩대며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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