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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독주

방으로 돌아온 하지연은 수옥이 차를 따르는 걸 보았다. 원씨는 이미 잠이 들어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약 효과가 아직 남아 있는 탓이었다. 조금 전 원씨는 강한 의지로 겨우 버텼다. “아씨, 마님께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수옥은 하지연이 돌아오자 켕기는 게 있는 표정으로 옆으로 물러났다. “그래.” 하지연은 다가가서 등갓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말했다. “넌 날 따라오너라. 저기 담장 쪽에 장미가 지나치게 자랐던데 가서 뽑거라.” “네!” 수옥은 매우 고분고분하게 하지연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담장 쪽에는 확실히 장미가 있었고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하지연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수옥아, 여기서 장미들을 뽑은 뒤에 나와 같이 저 망가진 등갓을 수리하러 가자꾸나.” 수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씨.” 문가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연이 고개를 들자 그 사람은 곧바로 담장 쪽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연은 차갑게 웃었다. 그들은 역시나 기다리고 있었다. 수옥이 장미를 뽑은 뒤 하지연은 수옥에게 돌아가서 원씨의 시중을 들라고 했다. 수옥은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뒤통수에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돌린 수옥은 경악한 얼굴로 하지연을 바라보았고 하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탈혼환을 돌렸다. 그 순간 전기 같은 것이 쏘아져 나갔고 수옥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연은 빠르게 수옥의 옷을 벗긴 뒤 그녀를 방 안 구석 쪽으로 옮겼고 천으로 그녀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그래도 숨을 쉴 수 있게 작은 구멍은 마련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수옥의 옷을 들고 창고 쪽으로 향했다. 잠시 뒤, 하지연이 수옥을 데리고 나왔다. 수옥은 손에 많은 것들을 들고 있었는데 전부 낡은 상자들이었다. 제일 위쪽에는 등갓이 하나 놓여 있어 얼굴이 완전히 가려졌다. 문 앞에는 사람 두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하지연이 나오자 두 사람은 지나가는 척하며 양쪽으로 흩어졌다. “빨리 걷거라!” 하지연이 호통을 쳤다. 수옥은 빠르게 하지연을 뒤따랐다. 다행히 정승 댁 시녀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치맛자락을 길게 했기에 큰 발을 감출 수 있었다. 하지연은 순조롭게 수옥을 문 앞까지 데려갔다. 옆에 앉아 있던 문지기는 하지연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씨.” 하지연은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작은 은혜조차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는 사람이었기에 문지기를 기억했다. 수옥은 누군가 문 앞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네자 당황하여 걸을 때 실수로 치맛자락을 디뎌 앞으로 몸이 쏠리며 들고 있던 물건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문지기는 서둘러 물건들을 줍다가 수옥을 힐끗 보고는 흠칫했고, 하지연이 빠르게 다가가 떨어진 물건들을 수옥의 품에 안긴 뒤 호통을 쳤다. “어쩌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느냐? 빨리 걷거라!” 수옥은 물건들을 안고 서둘러 도망쳤다. 문지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연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는 조금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아씨,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연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문지기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는 확실히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만두와 물 말이다.” 하지연이 말했다. 문지기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제가 아닙니다.” 문지기는 문간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돌아갔다. 그녀는 곧장 대부인의 처소로 향했다. 하지연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하백천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고 옥자도 문 앞에 서 있었다. 하백천은 하지연을 힐끗 보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쳤다. 연옥이 안에서 나오며 차갑게 웃었다. “아씨, 뒷간에 참 오래 있으셨습니다.” 하지연은 대꾸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사람들은 자세조차 변하지 않았다. 대부인 옆에 놓인 탁자 위에 있던 차는 이미 식었고 한 모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영용부인은 하지연이 안으로 들어오자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님께서 네게 불경을 베껴 쓰라고 하였는데 어디에 갔다 온 것이냐?”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니 하지연도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 그녀는 얌전히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조금 전에 배가 너무 아파 처소로 돌아가 약을 찾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좀 나아진 것 같아 빠르게 돌아와 불경을 베껴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니냐? 네 어미가 예절을 가르치지 않더냐?” 놀랍게도 대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싸늘했다. 하지연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대부인을 바라보았다. “송구합니다. 저는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가정 교육이라는 말로 하씨 가문 사람들까지 전부 끌어들였다. 대부인의 안색이 더 심각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짓만 했다. 하지연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연옥이 손에 접시 하나를 들고 있었고, 접시에는 술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술잔은 백자에 금빛 테두리가 되어 있었는데 작고 귀여우며 귀해 보였다. 하지연의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그 술은 절대 대부인이 그녀에게 하사하는 귀한 술이 아니라 독일 것이다. 방 안의 하인들 중에 연옥과 옥자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 밖으로 나갔다. 문은 굳게 닫혀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영용부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흥분 때문에 번뜩이고 있었다. 대부인은 독사와도 같은 눈빛으로 하지연을 빤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삼 일 전, 너는 사람들 앞에서 덕양왕 마마와의 혼인을 거절하고, 꽃가마에 타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일로 황후마마께서는 크게 노여워하셨으니 앞으로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니 너 혼자 책임지거라. 가족들까지 불구덩이로 끌어들이면 아니 된다. 황후마마께서는 자애로운 분이시라 시체는 온전히 남겨주마. 이 술을 마시거라. 그러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네가 갑자기 급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알려 네 명성을 지켜줄 것이다. 만약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래서 황후마마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려고 한다면 너는 온전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연은 황후가 더는 벌을 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황후는 그녀를 섭정왕과 혼인시키는 것이 최고의 형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연은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아버지 하종수를 바라보았다. 하지연은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지연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 몸의 원래 주인이 하종수에게서 사랑받고 싶어 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오늘 정승 댁 사람들은 하지연과 원씨를 동시에 죽이려고 했다. 그들은 이토록 매정하고 비정한 인간이었다. 하지연은 하종수가 마음속에 미안함이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종수는 하지연을 향한 혐오와 증오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지연이 혼인을 거절하는 바람에 그는 체면을 구기게 되었고, 그 일로 황후와 덕양왕의 미움까지 사서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하종수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자초한 일이라고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영용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긴 치맛자락을 끌며 하지연의 앞에 섰다. 그녀는 손을 뻗어 술잔을 가져와 하지연에게 건네주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네 서모로 그동안 네가 자라는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죽는 것이 참 안타까워. 하지만 너는 덕양왕 마마와 황후마마에게 밉보였다. 앞으로 살아남기는 힘들어. 그러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적어도 시체는 온전히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연은 영용부인이 아닌 하종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칠복 그 사람도 당신들이 꾸민 짓이지요? 오늘 일로 제 어머니와 진칠복이 정을 통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면, 그날 혼례식에서 공개되었던 파혼장의 내용이 사실이었다고 밝힐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날 제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얘기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나 봅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이렇게 더러운 수작을 써서 또 한 번 제 어머니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으니까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정승 댁에는 정말로 인간 같은 인간이 한 명도 없는 것 같군요. 모두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들뿐이니 말입니다.” 대부인이 노여워하면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거라. 그렇게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네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네가 만약 우리의 말에 따라 덕양왕 마마와 혼인했더라면 이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아도 됐을 것이다. 잔머리 좀 굴린다고 우리 가문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너는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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