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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섭정왕과의 혼인

하지연은 매우 불안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는 예를 갖추며 말했다. “네, 명심하겠사옵니다.” 황후는 시선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전만큼 부드럽지는 않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날카로움이 살짝 느껴졌다. “이번에 너는 덕양왕을 이용했고 덕양왕의 명성을 해쳤다. 그러니 너에게 벌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네가 어머니를 위해서 그랬던 걸 고려하여 가벼운 처벌을 내리겠다. 여봐라, 홍화를 가져와 이 아이에게 먹이거라.” 하지연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원래도 몸이 아주 허약한 상태였다. 하지연은 스스로 진맥해 본 적이 있는데 앞으로 임신하기는 아주 어려웠다. 만약 지금 홍화까지 마신다면 일말의 희망조차 전부 사라질 것이다. 섭정왕 독고용재의 정실부인이 될 사람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얼마나 잔혹한 여인인가. 하지연은 아이를 갖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황후의 처사는 매우 지나쳤고 하지연은 그 점에 화가 났다. 그러나 현재 하지연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약 예전 성격대로 행동했다면 지금 당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황후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지연에게는 돌봐야 할 어머니가 계셨기에 예전처럼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억울해도 참아야만 했다. 하지연은 홍화를 마셨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황후의 악독하면서도 증오 가득한 눈빛이 자꾸만 하지연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하지연은 등골이 오싹하고 두려움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야 하지연은 비로소 이 시대에서 괴롭힘 받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반드시 강해져서 자신을 지켜야 했고 힘을 길러야 했다. 이 길은 아주 길고도 험한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살아서 출궁할 수 있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방법이 있었다. 물론 그러려면 아주 큰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말이다. 홍화의 달콤한 향기가 목구멍을 지나 위로 향했다. 머리가 지나치게 어지러웠던 하지연은 무릎을 꿇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황후마마, 소녀 이만 물러나 보겠사옵니다.” 황후의 온기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궁했을 때처럼 출궁하거라.” 하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네!” 하지연은 문 쪽까지 걸어가 돌계단 위에 서서 궁녀가 마당에 자란 잡초들을 처리하는 걸 보았다. 그중 나팔꽃 한 송이가 벽을 타고 자라 화려한 색깔의 꽃을 피웠다. 한 궁녀가 하지연의 뒤에 조용히 나타나서 차갑게 말했다. “아씨, 황후마마의 명을 따르셔야지요.” 하지연은 궁에서부터 서문까지 세 걸음마다 무릎을 한 번 꿇고 아홉 걸음마다 머리를 한 번 조아렸다. 하지연이 서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시였다. 이때 길거리에는 행인들이 거의 없었기에 그녀의 초라한 몰골을 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연은 왼쪽 벽에 몸을 기댄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디뎠다. 그녀는 힘을 쥐어짜 내며 겨우 허리를 곧추 폈다. 골목을 돌자 한 마차의 발이 거두어졌다. 힐끗 보니 정승 댁 집사 하백천이었다. 하지연의 창백한 얼굴 위로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하백천은 하지연이 살아서 출궁할 수 있을지 알아보러 왔을 것이다. 마차는 이내 소리를 내며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연이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홀로 출궁한 걸 보았으면서도 하백천은 절대 그녀를 마차에 태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연은 그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정승 댁. “정승 나리, 부인, 큰아씨께서 출궁하셨습니다.” 저택의 집사 하백천이 말했다. 하지연이 입궁한 뒤로 하종수는 사람을 시켜 궁 안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만약 하지연이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면 그는 황급히 입궁하여 사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지연이 살아서 나오면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할 생각이었다. “황후마마께서 이렇게 자애로운 분이셨나요?” 영용부인은 믿기 어려웠다. 하지연이 사람들 앞에서 혼인을 거절한 것은 덕양왕에게 엄청난 치욕이었을 텐데 황후가 하지연을 죽이지 않았다니, 매우 놀라웠다. 하종수는 매우 의아했다. “확실히 보았느냐? 진짜 출궁하였느냐?” “나리, 부인,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황궁에서는 마차를 태워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보초를 서던 수문군의 말에 따르면 큰아씨께서는 들어갈 때와 나왔을 때 모두 세 걸음마다 무릎을 한 번 꿇고 아홉 걸음마다 머리를 한 번 조아렸다고 합니다. 저도 큰아씨께서 출궁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마가 심하게 부은 상태였고 손가락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형벌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종수는 하지연 때문에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황후의 친정은 세력이 엄청났기에 감히 황후의 심기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섭정왕 마마께서도 오늘 입궁하였다고 했습니다. 섭정왕 마마께서도 큰아씨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백천이 말했다. 하종수는 흠칫했다. “섭정왕께서 입궁하셨다고?” 섭정왕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덕양왕을 상당히 아끼는 편이었다. 하지연을 죽이는 것으로 황후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있겠지만 섭정왕에게는 그런 방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오늘 혼인을 거절당한 것은 황실의 치욕인데 섭정왕이 복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황제가 앓아눕고 섭정왕이 황제 대신 천하를 다스리게 된 뒤로 섭정왕은 줄곧 하종수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그에게 손을 쓸지도 몰랐다. 하종수는 순간 불안해졌다. “대감, 섭정왕 마마와 덕양왕 마마께서는 사이가 좋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번 기회에 저희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섭정왕 마마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분인데 말입니다.” 영용부인이 말했다. 하종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지연의 죽음이 섭정왕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기를 바라야지. 만약 정말로 나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참, 태자 전하가 혜원이와 혼인하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영용부인이 말했다. “혜원이가 말하길 태자 전하께서 직접 약조하셨다고 합니다.” 하종수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영용부인은 그를 힐끗 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참, 지연이가 돌아온다면 정말로 어머님의 뜻에 따라 하실 것입니까? 언제 손을 쓰실 것입니까?” 하종수는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어머니께 물어봐야겠다. 어느 정도까지 괜찮은지 말이다.” 영용부인은 덤덤히 웃었다. “사실 굳이 어머님께 여쭤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어머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시니까요. 이 일은 대감께서 직접 결정하셔도 될 듯합니다.” 영용부인은 하종수가 모든 걸 대부인에게 묻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종수가 대부인에게 의지할수록 저택에서 대부인의 지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영용부인은 악랄하고 매정한 대부인에게 이미 질렸다. 그러나 하종수는 영용부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저 영용부인이 대부인을 걱정한다고만 생각해서 말했다. “다른 일은 묻지 않아도 괜찮지만 이 일은 중요한 일이니 신중하게 행동해야지. 그러니 만일을 위해서라도 어머니께 묻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을 마친 뒤 그는 밖으로 나갔다. 대부인은 황후가 하지연을 출궁시켰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그녀는 연초를 피우면서 덤덤히 말했다. “나는 이미 예상했다. 황후마마께서는 궁중에서 하지연을 죽이면 자신이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러지 않은 것이다. 황후마마께서는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꺼리시니 말이다. 그러니 더러운 일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 그러면 언제쯤 손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종수가 물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일을 말하듯이 물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의 친딸을 죽이는 아주 잔혹하고 음험한 짓을 꾸미고 있었다. “이틀 뒤에 다시 보자꾸나.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죽으면 사람들은 황후마마께서 독을 먹여서 저택으로 돌아온 뒤에 죽은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황후마마는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다. 앞으로 혜원이의 일에 영향을 줄지도 몰라. 아직은 급하지 않으니 조금 더 기다리자꾸나.” 대부인이 담뱃대를 탁자 위에 내려놓자 하인이 입가심하라고 차를 가져왔다. 대부인은 차를 한 모금 머금은 뒤 머리를 젖혀서 입가심하고는 그릇에 차를 뱉었다. “알겠습니다!” 하종수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뒤 걱정이 되는 듯이 물었다. “황후마마께서 지연이를 살려둘 생각인 건 아닐까요? 만약 저희가 지연이를 죽인다면 황후마마께서 혹시라도...” 대부인은 고개를 들어 하종수를 힐끗 보았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구나. 황후마마께서 지연이를 용서할 생각이었다면 세 걸음마다 무릎을 한 번 꿇고 아홉 걸음마다 머리를 한 번 조아리게 할 리가 없지. 그것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종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역시 어머니께서는 현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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