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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한주혁은 시선을 거두고 임가현을 바라봤다. 조금 전 스쳤던 동요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목소리는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까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나 잠깐 나가서 전화 좀 할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임가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텅 비어버린 출입구를 한참 바라봤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려 애썼지만 끝내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더 머문들 무엇이 달라질까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려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호텔 정문 앞 차도에 거의 다다랐을 때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백서린이였다. 눈가의 붉은 기와 달리 표정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가현 씨, 벌써 가시려고요? 생일 파티 주인공이 이렇게 먼저 자리를 뜨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아니면... 주혁이가 저 따라 나가는 걸 보고 마음이 불편해지신 건가요?” 임가현은 백서린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피해 지나가려 했다. “가지 말아요.” 백서린이 손을 뻗어 길을 막았다. “주혁이에 대해서 알아두셔야 할 게 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가현 씨랑 주혁이 사이의... 그 우스운 결혼에 대해서도요.” “비켜요.” “왜요, 찔리세요?” 백서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더 다가와 임가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버젓이 앉아 있다는 거, 본인도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말해줄게요. 주혁이는 사실...” 임가현은 힘껏 손을 뿌리치려 했다. “이거 놔요!” 차도 가장자리에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실랑이를 벌이게 됐다. 그때 하이힐을 신고 있던 백서린의 발이 순간 미끄러졌다. 짧은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지려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임가현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 바람에 임가현 역시 균형을 잃고 함께 휘청였다. “아아아아!” 그 순간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돌음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혼란 속에서 임가현은 거대한 힘이 몸을 덮치는 걸 느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듯했고 이마와 뺨을 타고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따뜻한 액체가 순식간에 흘러내리며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귓가에서는 백서린의 날카로운 비명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아아악아아악아아!” 극심한 통증과 어지럼증이 그녀를 삼켜갔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기척과 뒤엉킨 소음, 그리고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희미해진 시야 너머로 임가현은 한주혁이 급히 달려오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늘 침착하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스친 당황한 기색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한 대표님, 두 분 다 중상입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만 현재 수술실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의료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사모님은 얼굴 부위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금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흉터가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백서린 씨는 손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제때 수술하지 않으면 피아노 연주에 지장이 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 임가현은 한주혁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린이부터 수술하세요. 서린이는... 피아노를 쳐야 해요.” “그럼 사모님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가현이한테 얼굴은 원래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하지 않다는 그 말이 임가현의 심장 깊숙이 박혔다. ‘그래, 난 원래 못생겼으니까...’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며 임가현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임가현은 병실에 누워 있었고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을 더듬었다. 두툼한 붕대가 얼굴 전체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백서린이 몇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붕대를 감은 손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가현 씨.” 백서린은 병상 옆으로 다가와 임가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꽤 크게 다쳤다던데요. 얼굴이 다 찢어졌다고 해서 이번엔 정말로 망가질 줄 알았네요.”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와...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살려 놓다니... 한씨 가문에서 부른 의사가 실력이 있긴 한가 봐요. 그런데요, 아무리 고쳐 놔도 원래 못생긴 건 가려지질 않네요. 이 두꺼운 붕대도, 앞머리도, 안경도 전부... 눈에 거슬려요.”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남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임가현은 그들을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가요.” 백서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분홍색 정장 차림의 김하늘이 먼저 발끈했다. “그 태도는 뭐예요? 서린이가 걱정돼서 일부러 찾아와 줬는데 나가라고요? 못생긴 것도 모자라서 인성까지 이 모양이면 어떡해요? 진짜 수준 떨어져서 못 봐주겠네요.” 임가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김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 시선을 백서린에게로 옮겼다. “서린 씨. 저 개 같은 친구, 얼른 입 다물게 하고 나가요. 전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아요.” “지금 저를 개 같다고 한 거예요?” 김하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붉어졌다. 그녀는 성큼 다가와 손을 치켜들었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임가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맞을 뻔한 순간 꽃무늬 셔츠를 입은 배우성이 김하늘 앞을 막아섰다. “야, 하늘아. 아픈 사람한테 손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스물일곱, 여덟쯤 되어 보이는 그는 병상 위의 임가현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히죽 웃었다. “한씨 가문 사모님이시라면서? 성질 하나는 꽤 세네.” 그는 두 걸음 다가와 병상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끈적한 눈빛과 노골적인 미소가 임가현을 짓눌렀다. “근데 말이야, 나 이런 타입 많이 봤거든. 얼굴은 별론데 성질만 센 여자들...” 그의 시선이 임가현의 얼굴과 몸을 천천히 훑었다. “이런 애들은 말이야, 남자 손 좀 타면 금방 얌전해져. 아무리 센 척해도 한 번 자고 나면 다 순해지거든.” 그러면서 배우성은 손을 뻗어 임가현의 이불 끝을 잡아 올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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