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1장
서지석은 진희원이 본인을 의심할 때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해준 존재였다.
그래서 그동안 진희원은 예언이 사실로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장현성은 실종되기 전 그녀에게 혼돈이 세상에 나타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절대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진희원은 그 말에 절대 찬성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서지석은 가족이었다.
서지석은 먹을 것만 주면 열심히 일하는 애송이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도의를 소중히 여겼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탓하려면 예전 소문을 탓해야 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홀려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교룡도 얘기했었다. 서지석에게는 주인이 한 명 있다고.
서지석은 아직 어린데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분명 주인이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진희원은 서지석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차라리 그 대단한 인물이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서지석도 위험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진희원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녀가 몸을 수그리고 앞으로 튀어 나갈 때, 검은색의 총알 같은 것이 차들 사이를 뚫고 나가는 듯했다.
이때, 산허리에 있는 별장.
한 노인이 집사가 건넨 찻잔을 깨뜨렸다.
찻잔 안에 들어있는 것은 차가 아니라 더러운 것이었다.
노인의 생기를 되찾았던 얼굴은 다시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계속해 숨을 심하게 헐떡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독기가 번뜩였다.
회의할 때와 달리 그의 눈빛은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만약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집사는 절대 이때 들어와서 물건을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전에 번개가 아주 크게 쳤고 주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응당 들어와야 했다.
“어르신, 괜찮으신가요?”
집사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노인은 그의 손목을 잡았고 집사의 손목에 빨간 자국이 남았다.
집사는 아프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손목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어르신, 밖에 어르신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집사는 노인에게 귀띔해 주었다.
노인의 두 눈동자가 기괴하게 움직였다. 그의 등에 벼락에 맞은 흔적이 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봉인은 더욱 강해졌고 제물을 바치려고 했던 약속도 파기되었다. 땅에서 오던 생기가 전부 끊겼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음침하면서도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날 만나려고 하는 거야?”
“오다 씨입니다.”
집사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오다 씨는 갑자기 찾아오셨습니다. 도우미들은 다 물러나게 했습니다.”
노인의 진득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들어오라고 해.”
“네.”
집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찻잔을 들고 물러나려고 했다.
이때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아주 불쾌할 정도로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씨 일가 요즘 너무 순조로운 거 아냐? 넌 어떻게 생각해?”
집사는 어떻게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노인은 겉으로는 줄곧 진씨 일가와 사이가 좋은 척했었다.
“네 생각을 말해 봐.”
노인은 눈을 반쯤 감았다. 단향목으로 된 팔찌를 한 그는 사람을 보지 않을 때면 도를 닦는 사람의 기운을 내뿜었다.
집사는 솔직히 말했다.
“진씨 일가의 일곱째 딸 진희원 씨가 돌아온 뒤로 진씨 일가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다시 진씨 일가와 협력하고 싶으신 겁니까?”
노인은 단향목 팔찌를 만지작대면서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가서 도련님을 데려와. 걔한테 시킬 일이 있어.”
“네, 어르신.”
집사는 문을 닫고 나갔다.
잠시 뒤, 오다라고 불렸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다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진원의 집사였다.
“대사님.”
오다는 노인을 굉장히 깍듯하게 대하며 과거 일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예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