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여보, 나 아파
하얀 천장과 눈부신 조명, 그리고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이내 강이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뒤통수에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는데 꼭 누군가가 망치로 세게 내리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팔을 들어 눈부신 조명을 가리려 했지만 팔에 무언가가 고정된 걸 발견했고 온몸이 아팠다.
“움직이지 마.”
오른쪽에서 들려온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는 꼭 겨울에 얼어붙지 않은 차디찬 샘물 같았다.
강이영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남자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는 서른 초반쯤 되어 보였고 정장을 입은 채 병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남자의 콧대는 높고 턱선은 날카로우며 온몸에서 위압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특히 왼쪽 눈썹 위의 옅은 흉터는 그의 차가운 얼굴에 더 위험한 기운을 풍기게 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강이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자의 눈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먹처럼 새까맸던지라 보고 있기만 해도 빠져들 것 같았다.
남자는 일어나 호출 벨을 눌렀고 움직임과 함께 은은하게 나던 우드 향이 더 크게 코끝에 맴돌았다.
강이영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이 불에 덴 듯 따갑고 아팠다.
“물...”
힘겹게 목소리를 내자 눈가가 바로 붉어졌다.
남자는 곧장 따듯한 물을 따라주더니 강이영의 머리를 큰손으로 받쳐 주었다. 따뜻한 남자의 손바닥은 피부가 조금 거칠어 흠칫하게 되었다.
“조금씩 마셔.”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친절하게 빨대의 각도를 가장 편한 위치로 맞춰 주었다.
강이영은 순순히 빨대를 물고 촉촉해진 눈으로 남자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빤히 보았다.
따듯한 물이 목을 적시자 기억의 문도 열렸다.
약혼식을 치르러 가던 길과 눈부신 자동차 불빛, 귀에 들려오던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
‘약혼식... 약혼자... 그럼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여보!”
강이영은 갑자기 흐느끼며 묻지도 않고 그대로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 수액관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당겨졌지만 상관하지 않았고 솜털 같은 머리를 그의 목덜미에 파묻으며 말했다.
“나 너무 아파요...”
남자는 온몸이 굳은 채 물컵을 든 손이 허공에 멈췄다.
“지금 뭐라고 불렀지?”
미간을 구긴 남자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여보!”
강이영은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어느새 코끝도 붉게 물든 채 남자의 넥타이를 붙잡아 당겼다.
“당신 혹시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요? 나 깨어났는데 병실도 예쁘게 꾸며주지 않고...”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표정이 어딘가 복잡해졌다.
그는 물컵을 내려놓고 긴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고 손등 위로 푸른 혈관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난 네 약혼자...”
‘...의 아버지다.'
뒷말을 잇기도 전에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대표님, 강이영 씨의 CT 결과가 나왔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의사가 검사 결과지를 들고 들어왔다.
강이영은 놀란 토끼처럼 움찔했지만 여전히 유정한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고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약혼자라고 해도 곧 남편이 될 거잖아요!”
강이영의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의심할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듣던 의사는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이내 복잡하게 변했다.
‘지금 뭘 들은 거지?'
‘강이영이 지금 대표님을 자기 약혼자로 착각한 건가? 심지어 남편이라고?'
유정한은 강이영의 촉촉하게 젖은 눈을 빤히 보았다. 그 속에는 설움과 불안, 기대하는 눈빛이 가득 담겨 있어 가엾기도 했던지라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유씨 가문이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었으니까.
강이영의 눈에 빛이 돌더니 곧바로 유정한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말 잘 들을게요, 여보. 가지 말아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