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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얌전하고 순수한 그녀

강이영은 침대에 몸을 반쯤 기대어 있었고 미역처럼 긴 머리카락이 새하얀 베개 위에 흩어져 끝부분이 살짝 말려 있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에는 둥글고 맑은 눈이 별빛을 머금은 듯 빛났고 짙은 속눈썹은 눈 아래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고 오뚝한 콧대와 출혈이 심해 창백해진 입술은 오히려 더 가련하게 보이게 했다. 환자복이 커서 몸매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소매 사이로 나온 손목은 힘주면 바로 꺾일 듯 가늘었고 쇄골은 조각가가 예술 작품을 만든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본 주석훈은 속으로 감탄했다. 강이영의 외모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 정교하게 조각한 인형 같았으니까. 이 도시에서는 물론 전국 어디에서도 이런 미모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은성은 어쩌자고 이런 얌전하고 여린 약혼자를 버리고 도망을 친 거지?' “구경은 다 했나?” 차가운 목소리가 불쑥 울려 퍼졌다. 정신이 번쩍 든 주석훈은 유정한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지금 나가겠습니다!” 그는 도망치듯 병실을 나가면서도 마지막까지 강이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이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유정한을 향해 웃음을 지었고 볼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며 아주 예뻐 보였다. 너무도 얌전하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병실 안에서 노트북이 켜지는 순간 유정한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고 기세도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강이영은 고개를 기울여 일하는 유정한을 몰래 훔쳐보았다. 유정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보고서를 보며 손끝으로 부단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가끔 얇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단어들은 그녀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비록 기억은 텅 비어 있었지만 몸은 아직도 이 두근거림을 기억하는 듯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강이영은 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몸을 작게 웅크린 채 수시로 유정한을 몰래 훔쳐보는 모습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동물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강이영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비몽사몽 한 사이 누군가 이불을 덮어 주는 게 느껴졌고 차가운 손끝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은은한 우드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점차 강이영은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나선형 계단에 서 있었고 흰 잠옷은 조금 짧아져 가느다란 발목이 드러나 있었다. “엄마...?” 소녀는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자 텅 빈 거실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2층에서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어머니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어디 가?” 소녀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가볍게 밀려나고 말았다. “이영아, 말 들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붉은 매니큐어 칠한 손가락이 소녀의 뺨에 닿았다. “엄마는 며칠 뒤에 돌아올 거야.” “엄마, 나도 갈래요...” 소녀는 울며 어머니를 껴안으려고 했지만 품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눈앞의 장면이 갑자기 비틀어지더니 어머니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소녀는 전보다 자란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영아.” 아버지의 모습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드러났고 콧대 위 안경이 차갑게 빛났다.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차가운 벽에 등을 부딪쳤다. “유씨 가문과의 혼사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냥 아빠를 돕는다고 생각해, 알겠니? 네가 얌전히 그 가문에 시집가면 평생 아빠의 착한 딸이 되는 거야...” 악몽에서 깨어난 강이영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버렸고 찝찝해서 불편했다. 손을 들어 눈을 비비니 팔에 꽂혀 있던 수액 바늘은 이미 빠져 있었고 방금 꾼 꿈을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동남아 시장 데이터에 문제가 있군요.”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강이영은 고개를 돌렸다. 창밖은 이미 어스름이 깔렸고 유정한은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있었으며 노트북 화면의 차가운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이번 분기 안에 반드시 인수를 마쳐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린 것을 보아 그녀의 휴식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강이영은 그가 회의 중이라는 것을 잊은 채 나른하게 팔을 뻗었다. “여보, 나 안아 줘요.” 막 잠에서 깨어났던지라 목소리가 너무도 나른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요...” 화면 속에서 보고를 올리던 재무이사가 갑자기 그 소리를 듣고 멍해졌다. 열댓 명의 임원들도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고 마침 물을 마시던 사람은 그대로 뿜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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