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영양실조
강이영은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일주일 동안 유정한은 거의 매일 병원에서 강이영의 곁을 지켰다. 물론 그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강이영이 그가 잠깐이라도 사라지면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그가 나가려고 하면 바로 입술을 삐죽이며 눈가가 촉촉해졌고 눈물을 흘리며 ‘여보'라고 부르니 유정한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낼 수도 없었던지라 그저 강이영에게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뒤, 의사는 강이영에게 전신을 검진한 뒤 퇴원을 허락했다.
퇴원하는 날에 자신을 추미선이라고 소개한 중년 여성이 강이영에게 새 옷을 가져왔다.
“옷은 대표님이 말씀하신 사이즈로 샀고 이미 세탁도 했으니 입어보세요.”
추미선의 목소리는 아주 온화했다.
강이영은 일주일 내내 환자복만 입었기에 오늘은 퇴원하는 날이었으니 당연히 갈아입어야 했다.
옷을 갈아입은 강이영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에 비해 한 치수 큰 원피스를 잡아당기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주머니, 우리 남편 혹시 기억력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추미선을 바라보며 눈가에 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것 보세요. 이 정도면 저 두 명은 들어가도 되겠어요.”
추미선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대표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사이즈를 잘못 기억하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강이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길게 끌리는 치맛자락을 잡고 토라진 토끼처럼 추미선을 따라 병실을 나섰다.
복도 끝에서 유정한은 강이영의 주치의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상이라고요?”
의사는 검사 결과지를 들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네, 강이영 씨는 교통사고 상처 외에도 내상이 많습니다. 제 경험상 아마 장기간 학대당해 생긴 흔적 같습니다. 게다가 영양실조도 있고요.”
유정한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
‘강씨 가문의 장녀가 아니었나? 어떻게 학대를 당하고 영양실조까지 있을 수 있는 거지?'
강씨 가문이 위기에 처하자 강진철은 뻔뻔하게도 유씨 가문을 찾아와 이미 오랫동안 잊힌 혼약을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자기 딸의 사주까지 내밀었다.
유정한은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강이영의 나이가 심은성과 비슷한 걸 보고 심은성에게 대신 결혼하라고 했다.
그는 장기간 해외에 있었던지라 심은성을 돌볼 수 없었고 그 바람에 심은성은 망나니가 되어 점점 제멋대로 굴었다. 심은성을 강이영과 약혼시키려 한 것도 심은성의 성격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 망할 놈이 약혼 당일에 도망칠 줄은.
“몸조리로 회복이 가능한가요?”
유정한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이영 씨는 아직 젊으니 몸조리만 잘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유정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꺼내 주석훈을 불러냈다.
“가서 강이영이 강씨 가문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아봐요.”
그는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강씨 가문에서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
한편 강이영은 병실을 나오자마자 통화 중인 유정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잘 재단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곧은 자세로 전화를 하며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마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지만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강이영은 무심결에 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눈으로 유정한을 보았다.
‘내 남편 정말, 너무 잘생겼어!'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유정한이 고개를 돌렸다.
강이영이 입은 옷이 한 치수 크다는 걸 보게 된 유정한은 바로 미간을 확 구겼다.
옅은 파란색 원피스는 자루처럼 강이영의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고 치맛자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어 마치 동화 속 공주처럼 치맛자락을 잡고 다녀야 했다.
“별장에 있는 강이영의 옷을 전부 작은 사이즈로 바꿔요.”
그는 핸드폰을 들고 전화기 너머의 주석훈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주석훈은 잠시 멍해져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분명 강씨 가문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왜 갑자기 옷 얘기가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주석훈은 확신이 없어 물었다.
“전부 말입니까? 대표님, 그건 지난주에 산 옷인데...”
“전부. 바꿔요.”
유정한은 단호하게 말을 끊어버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몸에 좋은 보양식도 준비해둬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강이영은 종종걸음으로 유정한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팔에 팔짱을 꼈다.
“여보, 정리 다 끝났으니까 우리 집에 가요.”
유정한은 팔이 순간적으로 뻣뻣해졌지만 곧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