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당하고 싶어서 먼저 기어들어 온 거 아니었어? 그래서 손 좀 봐준 거야!

유정한은 미간을 좁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점만 말해.” “쳇, 재미없긴.” 하채윤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걱정 마, 이영 씨 몸 안에 독성 물질 잔여물 같은 건 없으니까. 후유증도 안 남을 거야. 다만 빈혈기가 조금 보이니까 잘 쉬고, 영양소만 잘 챙겨주면 문제없을 거야.” “응.” “끝? 대답이 이게 다야?” 하채윤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일부러 검사실 애들한테 부탁까지 해가면서 급하게 결과 뽑아온 건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해줘?” 유정한은 그제야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말로만 고맙다고 하면 끝이야?” 하채윤은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교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나한테 진민혁 새 전화번호 좀 알려줘. 그거면 감사 인사 다 한 거야.” 유정한은 아무 대답 없이 다시 미간을 구겼다. “이번에 나가면서 번호까지 다 바꿔버려서 연락이 안 된단 말이야.” 하채윤의 목소리에서는 알아채기도 힘든 아쉬운 기색이 어렸지만, 곧 다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돌아왔다. “어차피 오빠는 분명, 민혁 씨 찾아낼 수 있잖아. 그렇지?” 말을 끝낸 하채윤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걱정 마, 정한 오빠. 민혁 씨 임무 수행 중인 거 잘 알고, 나도 방해할 생각은 없어.” 잠시 침묵을 지키던 유정한은 결국, 무표정한 얼굴로 숫자 한 줄을 읊어주었다. “고마워, 정한 오빠.” 하채윤은 드디어 원하는 걸 얻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밝고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꼭 오빠랑 이영 씨 따로 불러서 밥이라도 한 끼 사줄게!” ... 침실. 강이영은 침대에 엎드린 채,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입에는 막대 사탕까지 물고 있는 것이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강이영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뻗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이영! 수빈이는 네 언니야. 어떻게 언니한테 그렇게 굴 수가 있니!” 휴대폰 너머로 강진철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멍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