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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임지영은 한은찬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녀가 직접 심은 튤립들이 피어 있어 두 사람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그림 같아 보였다. 송해인은 코웃음을 쳤다. 송해인은 한은찬이 임지영을 살짝 밀어내는 모습도 보았다. 한은찬은 바지 주머니에서 임지영이 실수로 떨어뜨린 샤넬 립스틱을 꺼내 임지영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더 나눈 후 임지영이 하이힐을 신고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하려 했다. 송해인은 너무 역겨워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발길을 돌려 힘겹게 옷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옷방에 송해인의 옷들은 따로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무채색의 드레스들로 순수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은찬은 송해인이 무채색을 입는 것을 좋아했지만 송해인은 사실 무채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한은찬이 ‘너는 흰 드레스가 잘 어울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의 취향에 맞춰 스스로를 꾸며왔던 것이다. 송해인은 이런 자신이 정말 너무 우스웠다. 옷장 안쪽의 비밀 서랍을 여니 그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 여권, 은행 카드, 그리고 휴대폰 두 대와 함께 두툼한 서류 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봉투 표지에 쓰인 ‘연성 대학교’ 네 글자에 시선이 사로잡힌 송해인은 잠깐 훑어본 후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이 서류 봉투 안의 내용물은 아직 발송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송해인에게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은 것들이기도 했다. 송해인은 휴대폰 한 대를 꺼내 잠금을 푼 뒤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다행히 모든 연락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선 절친 정채영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정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흥분한 듯 말했다. “해인아! 너 맞지?” 송해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정채영이 먼저 말했다. “경고하는데 지금 전화를 건 게 내 소중한 해인이 아니라 한은찬 이 개 같은 남자면 내 잠을 방해한 대가로 내일 SNS에 널 까발리고 욕할 거야. 내 8천만 팔로워들, 실력이 장난 아니거든!”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송해인은 웃음이 터졌다. “채영아, 나야.” 전화기 너머가 순간 조용해졌다. 하지만 정채영을 너무 잘 아는 송해인은 휴대폰 수화기를 멀리 떨어뜨리고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셋, 둘, 하나...’ “아악!” 정채영이 비명을 질렀다. “해인아, 내 보물 같은 친구야! 드디어 깨어났구나, 흑흑. 너무 보고 싶었어! 너 지금 병원이야? 집이야? 주소 알려줘, 나 지금 당장 갈게!” 송해인도 절친을 너무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채영아, 지금은 아직 너를 만날 수 없어. 너에게 부탁할 게 두 가지가 있어.” “뭐든 말해! 뭐든 다 할 테니까!” 정채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한은찬, 그 개 같은 자식! 내가 사람을 시켜 죽여버릴 수도 있어. 그 자식이 감히 너를 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만들다니!” 이게 진짜 절친이다... 송해인은 속으로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채영아, 한은찬 곁에 있는 임지영이라는 비서에 대해 가능한 한 자세히 알아봐 줘.” “알겠어. 네가 식물인간이 된 지난 몇 년 동안, 한은찬이 모든 공식 행사에 임지영을 데리고 다녔어. 그 여자 매번 본인이 사모님인 양 차려입고 다니더라고. 진작부터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었어!” 송해인은 침묵했다. 사실 임지영은 원래 송해인의 비서였다. 송해인이 임신 중일 때 한은찬이 그녀를 위해 고용했다고 했었다. 힘들까 봐 그랬다면서. 하지만 지금 보니 한은찬과 임지영의 관계는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해인아, 그럼 두 번째 부탁은 뭐야?” 정채영의 물음에 송해인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일, 나 대신 정원사 몇 명 불러줄 수 있어? 앞마당의 튤립들을 다 뽑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 장미!” 정채영이 먼저 대답하자 송해인은 약간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송해인은 어릴 적부터 노란 장미를 좋아했지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은찬이 튤립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고 정채영은 대학 시절 그녀의 룸메이트였다. 그런데 정채영이 어떻게 알았을까? 정채영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었네. 네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정말 노란 장미였어.” “그 사람이 누구인데?” 송해인의 물음에 정채영은 송해인을 깜짝 놀라게 할 이름을 말했다. “배도현, 그 사람이 내게 말해줬어.” 송해인은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배도현이라는 이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남자의 지나치게 잘생긴, 그리고 약간은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얼굴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배도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 공항에서였다. 그날 송해인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한은찬의 전화를 받고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배도현은 그녀를 막아선 유일한 사람이었다. 송해인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선 배도현은 키가 커 햇빛이 가려졌다. 창밖의 노을이 배도현의 얼굴에 드리워 매혹적인 검은 눈동자를 더욱 차갑고 음침하게 보이게 했다. 배도현이라는 사람은 사실 냉정하고 무심한 성격이었다. 항상 모든 일을 남의 일처럼 대하는 듯한 냉담한 눈빛, 배도현은 그토록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송해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배도현의 눈빛은 지독히도 차가웠다. 송해인은 배도현의 어두운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배도현이 그녀에게 한 마지막 말을 기억했다. ‘송해인,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아름답고 날카로운 입술을 살짝 달싹이며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송해인은 배도현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불나방처럼 불길로 뛰어드는 듯한 결연함으로 배도현의 곁을 스쳐 지나간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하지만 지금, 송해인은 배도현에게 대답할 수 있다. 송해인은 거울 속에 비친 창백하고 수척한 자신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가치는 없었어. 하지만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 손으로, 직접 정리할 거야. 배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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