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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화면은 내가 부모에게 버려져 길거리를 떠돌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 보육원에 들어가 뒤늦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날들, 학교에서 소하린과 만나 둘도 없는 단짝이 된 모습, 그리고 소하린의 생일 파티에서 소도현을 처음 보고 한눈에 빠졌던 순간까지 차례로 흘러나왔다. 수많은 장면이 깜빡이며 지나갔지만, 정작 모두가 찾는 결정적인 장면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기계 앞에 서 있던 스태프들이 어쩔 줄 모르며 말했다. “윤소정 씨 의지가 너무 강합니다. 이 기억 추출기만으로는 더 이상 기억을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버티는 사례는 저희도 처음 봅니다.”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소도현을 바라보며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소도현 눈에는 그것조차 말 한마디 못 하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소도현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스태프의 옷깃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떤 방법이든 써. 대가가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 가까운 관중석 쪽에서, 예전에 소도현을 짝사랑하던 여자 후배 하나가 소도현의 소매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람 몸에는 자기 보호 본능이라는 게 있어요. 고통을 끝까지 끌어올리면, 더 이상 기억을 통제할 수가 없게 돼요.” 손미향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훔쳐내고 체육관을 뒤져 녹슨 가위 하나를 들고 와 소도현에게 내밀었다. “손가락이 심장이랑 이어져 있다잖아. 손가락을 잘라 버리면 저년도 못 버틸 거야.” “우리는 하린이 가족이야. 하린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해.”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도현에게로 쏠렸다.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얼른 하세요. 소 대표님, 우리는 진실을 원해요!” “인신매매범을 하루라도 놔두면, 그 사이에 또 피해자가 생겨요!” 수많은 사람의 선동 속에서 소도현의 눈빛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소도현은 내 침대 곁으로 걸어와 가늘고 창백해진 내 손가락을 잠시 쓰다듬더니 눈썹을 세게 찌푸리고 그 녹슨 가위를 내 엄지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직접 내 엄지손가락을 잘라냈다. “이 모든 게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너 같은 인간쓰레기는 백번을 죽어도 죄를 다 갚을 수 없어.” 뼈까지 파고드는 통증에 나는 의자에서 튕겨 오르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비돼 있던 몸이 지렁이처럼 심하게 꿈틀거리며 떨렸다. 눈가와 콧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와 또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 “넌... 후회할 거야.” 소도현은 잠깐 나를 내려다보더니 차갑게 눈을 내리깔고 피와 살이 엉겨 붙은 상처 속으로 다시 가위를 꽂았다. “내가 후회하는 건 네 진짜 모습을 더 일찍 못 알아본 것뿐이야.” “하린이 인생을 망쳐 놓은 년...” 한 번, 두 번... 결국 내 열 손가락이 뿌리째 전부 잘려 나갔다. 가슴을 찢는 비명이 체육관 천장에 부딪혀 몇 번이고 되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 위에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어두운 렌트 와이프 클럽의 좁은 복도를 숨 가쁘게 오가고 있었다. 마지막에 한쪽이 반쯤 열린 문 앞에서 멈춰 서더니, 문틈에 귀를 대고 안을 엿봤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사람 그림자를 향해 나는 숨을 죽인 채 한참을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분노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나는 결국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안에 있던 사람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화면은 내 시선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렸다. 몸싸움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내가 바닥에 꽉 눌려 고정되는 순간, 그제야 상대의 얼굴이 화면 가득 또렷하게 잡혔다. 체육관 안 모두가 그 익숙한 얼굴을 보고 숨을 삼켰다. “말도 안 돼...” “윤소정, 이게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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