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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지아야?”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본 심주혁은 점점 짜증이 묻어난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대체 왜 그래?” 정신을 차린 온지아는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을 억누른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조예원 노래, 분명 엄청 좋을 텐데... 난 들을 수가 없으니까. 너무 속상해.” 그 말을 하고 나서 온지아는 심주혁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조소의 빛을 분명히 봤다. 그건 마치 이 멍청한 귀머거리에게 동정심이라도 느끼는 척해 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됐어.” 그는 억지로 성질을 누그러뜨리며 그녀 앞에서 천천히 입 모양을 만들었다. “네 병도 천천히 나아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과 함께, 그는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안아 올려 침실로 데려갔다. 포근한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힌 다음 그는 망설임도 없이 그녀 위로 몸을 겹쳤다. 뜨겁고 탐욕스러운 키스가 이어졌고 그의 손은 익숙하게 그녀의 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속옷의 후크가 순식간에 풀렸다. “그만... 하지 마.” 온지아는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밀쳐냈다. 속에서 들끓는 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그의 손을 막았다. 예전 같았으면 달랐을 것이다. 그녀는 심주원을 사랑했고 그를 위해서라면 밤을 새워 뒤엉켜도 몸이 부서져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지금 자신 위에 올라탄 이 남자가 심주원이 아닌, 그의 동생 심주혁이라는 사실을. “왜 이래?” 처음으로 거절당한 심주혁은 순간 당황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기분이 안 좋아서... 오늘은 하기 싫어.”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며 그를 밀쳐내고 등을 돌린 채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젠장...” 셔츠의 단추를 하나 끼우자마자 뒤에서 심주혁이 욕설을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온지아가 못 듣는다고 철석같이 믿었기에 통화할 때마다 항상 스피커폰을 켜두었다. 통화 연결음이 끝난 뒤, 심주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때문에 하늘이랑 영상 통화가 끊겼잖아. 무슨 일인데?” “이 귀머거리 오늘 왜 이래?” 심주혁의 목소리엔 분명한 짜증과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기분이 안 좋다며 나랑 안 하겠대.” “네가 뭔가 건드렸겠지.” 심주원은 한층 더 냉정하게 말했다. “오늘따라 얘가 기분이 별로긴 해. 하고 싶으면 적당히 달래 봐. 얘는 좀만 잘해줘도 금방 넘어가.” “달래라고?” 심주혁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런 성격 아닌 거 알잖아. 잠자리에서 해주는 말 몇 마디도 억지로 참고 있는 건데 더 못 해.” 그는 휴대전화를 꽉 쥐고 쏘아붙였다. “걔 때문에 하늘이 성형에 개명까지 해야 했잖아. 곡 좀 쓰길래 그냥 놔둔 거지 아니면 진작에 죽여버렸을 거야. 아, 몸매 기가 막히는 것도 한몫하지.” 온지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심주원뿐 아니라 심주혁도 똑같이 강하늘을 사랑하고 있었고 똑같이 자신을 ‘도구’로만 여기고 있었다. “젠장, 됐어.” 심주혁은 신경질적으로 욕을 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술 마시러 나간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온지아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곧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닫혔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고 커다란 저택 안에는 다시 고요만이 남았다. 한여름의 날씨임에도 온지아는 몸속 깊숙이까지 얼어붙는 한기를 느꼈다.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엔 예전에 자신을 가르쳤던 장 교수의 이름이 떠 있었다. 메일 내용을 확인하자 첨부된 건 몇 곡의 악보와 짧은 글이었다. [우연히 이 가수 노래를 들었는데 어딘가 익숙해서 악보를 따봤더니 네가 예전에 썼던 곡들이랑 똑같더라. 네가 직접 대응할래?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 온지아는 악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다 결국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심주원은 심지어 그녀가 3년 전 과제로 교수에게 제출했던 곡들까지 강하늘에게 넘겼다.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 메일을 바라보다 오래전 연락처 하나를 찾아내 번호를 눌렀다. “교수님, 저 온지아예요. 메일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직접 대응하고 싶어요.”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수화기 너머에서 놀람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지아? 네가 전화를... 너, 지금 들을 수 있는 거야?!” “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온지아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교수님 기억하시죠? 3년 전 출국하시면서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원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현우의 목소리가 감격에 떨리며 터져 나왔다. “지금... 너 나한테 오겠다는 거야?” “네.” 온지아는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그땐 청각장애가 있어서 교수님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저... 교수님께 가고 싶어요.” “잘됐구나!” 장현우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너처럼 재능 있는 아이, 그때도 데려가고 싶었어. 지금은 더더욱 그래!” “넌 내가 지난 10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아이였어. 너의 음악은 절대 묻혀선 안 돼.” 온지아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잘 들어. 일주일 뒤, 내가 직접 한국에 가서 너 데려갈게.” “그 전에 우리 함께 자료를 정리하자. 국립예술대학의 이름으로 그 조예원이라는 가수를 정식으로 고소할 거야.” “음악은 더럽혀져선 안 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지.” 그 말에 온지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딱 일주일만 견디면 그녀는 이 지옥 같은 집과 혐오스러운 형제들 곁을 완전히 떠날 수 있다. 이제 진짜 그 끝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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