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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내일 소은이 생일이니까 저녁 7시에 유니오 호텔로 와라.”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늦지 말고.” “저, 저는...” “이만 끊으마.” 상대는 어떠한 거절도 허락하지 않았다. 파티 당일, 신채이는 가장 단정한 검은색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소은과 며칠째 얼굴을 보지 못했던 박한섭이 눈에 들어왔다. “신소은은 정말 팔자도 좋아.” 옆에서 두 명의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양부모님이 진짜 애지중지 키웠잖아. 박 대표님까지 저렇게 신경 써주는 거 보면 말 다 했지.” “그러니까. 듣자 하니 이번 파티도 박 대표님이 직접 준비했다더라. 저 샴페인 봐, 엘라니아에서 비행기로 바로 가져온 거래. 한 병에 몇천만 원은 기본이라던데? 저 꽃들도 오늘 아침 네덜란드에서 공수한 거고 파티장 전체는 신소은이 좋아하는 모네의 정원 테마로 꾸몄다더라. 비용이 수백억을 넘었대.” 손님들의 속삭임이 끊임없이 귓가에 닿았다. 신채이는 잔을 들어 조용히 한 모금 마시며 멀리 서 있는 박한섭을 바라보았다. 오늘 그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셔츠의 윗단추가 몇 개 풀려서 쇄골이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만 해도 날카롭고 여유로운 남성미가 넘쳐났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지금은 몸을 숙여 신소은의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늘 얼음 같던 얼굴에 믿을 수 없게도 부드러운 미소까지 떠올랐다. “자, 지금부터 소은 씨의 부모님께서 사랑하는 따님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신채이의 부모는 신소은의 팔을 끼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신정훈은 마이크를 잡고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천천히 객석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저는 중대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세운 그룹의 지분 60% 전부를... 소은이에게 상속하려 해요.” 순간, 객석이 술렁였고 신채이는 들고 있던 잔을 더 꽉 쥐었다. 그때, 박한섭도 무대 위로 오르더니 주머니에서 벨벳 상자를 꺼냈다. 뚜껑이 열려보니 안에는 옛스럽고 소박한 느낌의 비취반지가 들어 있었다. “저거 박씨 가문의 가보 아니야?” 어디선가 누군가 숨을 삼키듯 말했다. “그거 들었어? 저 반지, 박씨 가문 어르신이 장손 며느리에게 주라고 남긴 거래.” “세상에... 그걸 처제 손가락에 끼워준다고? 사람들 앞에서 신채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네...” 반지는 마치 애초부터 신소은의 손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녀의 약지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빠, 엄마, 한섭 씨... 이건 너무하지 않아요?” 신소은이 갑자기 객석 한쪽을 바라보며 일부러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언니는 신씨 가문의 친딸이고 박씨 가문의 안주인이잖아요. 이런 것들은 원래 언니 몫 아닌가요?” 그 말이 끝나자 신정훈과 김혜선은 즉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채이가 박씨 가문에 시집가서 든든하게 자리를 잡았으니 우리는 네 미래를 더 생각해야지. 재산은 당연히 네가 가져야 한다.” 박한섭도 담담하게 말을 보탰다. “이 반지는 원래 네 것이었어. 그 일만 아니었어도...” 신채이는 사람들 사이에, 마치 벌거벗겨진 채로 무대 한가운데 세워진 것만 같았다. 부모의 말은 따귀 같고 박한섭의 말은 날 선 칼처럼 그녀의 마음을 베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죄다 신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동정, 비웃음, 흥미, 조롱... 그 모든 눈빛이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불쌍하네.’ 모든 걸 차지했다는 듯 뿌듯해하는, 신소은이 보내는 우승자의 눈빛도 느껴졌다. 옛날 같았으면 분명 절망감에 빠져 죽고 싶어 했을 것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마음은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했다. 곧 신채이가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작은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저 눈 빨개진 거 좀 봐...” “분명 화장실 가서 울려는 걸 거야...” “진짜 불쌍해. 친부모도, 남편도 양딸만 예뻐하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나는 흠잡을 데 없이 단정했다.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는 애초에 슬픔이 붙어 있을 자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모의 사랑을 구걸하던 자신도, 박한섭의 마음을 얻으려 모든 자존심을 버렸던 자신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진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토록 신채이를 짓눌렀던 사람들은, 지금의 그녀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낯선 군중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조용히 이민 서류가 완성되길 기다리고 그 후부터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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