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심가연은 반사적으로 구진성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힘만은 단단했다. “가지 마세요.” 구진성은 고개를 돌려 심가연을 봤다. 얼굴에 선명히 찍힌 손자국이 눈에 들어오자 구진성의 눈빛에 분노가 거세게 번졌다. “그 사람이 심가연 씨를 때리기까지 했는데 아직도 그 사람을 감싸고 있어요?” “전 그 사람을 감싸는 게 아니에요...” 심가연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한없이 지쳐 있었다. “전 그냥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심가연은 진심으로 지쳐 있었다. 낮에는 도은아의 함정에 빠져 도둑으로 몰려 친아들 곁을 떠나야 했고 밤에는 미쳐 날뛴 임준석을 상대하게 되었다. 지금 심가연이 바라는 건 그저 잠시라도 편히 눈을 붙이는 것뿐이지 구진성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혼인 싸움에 휘말리는 건 바라지 않았다. 만약 구진성이 지금 임준석을 찾으러 간다면 모든 게 들통날 게 뻔했다. 아직은 모든 걸 드러내는 때가 아니었다. 구진성은 심가연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결국 깊게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억지로 삼켜버렸다. “차에 타요.” 구진성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심가연은 굳이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조수석에 앉았다. 차 안은 난방이 가득했지만 심가연은 여전히 춥게만 느껴졌고 무의식적으로 슈트 재킷 끝을 꼭 움켜쥐었다. 구진성은 시동을 걸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핸들을 쥐고는 심가연을 흘끗 보며 퉁명스레 물었다. “심씨 가문으로 데려다줄까요?” 심가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가기 싫어요.” 구진성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어디로 가고 싶어요?” 심가연은 고개를 의자에 기대고 지친 듯 눈을 감았다. “근처 호텔 아무 데나 다 괜찮아요.” 구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들을 꺾어 곧장 도심으로 향했다. 차 안은 고요했고 에어컨 바람 소리만 은은하게 흘렀다. 꽉 조여 있던 심가연의 신경도 조금씩 풀렸지만 얼굴의 뜨거운 통증은 여전히 선명했다. “왜 다툰 거예요?” 갑자기 구진성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