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정다은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김현석이 그들의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곧게 뻗은 자세, 차갑고 금욕적인 분위기는 이 시끄럽고 아찔한 술집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마치 신이 필멸의 세계에 잘못 들어선 듯 주변의 모든 것이 그로 인해 빛을 잃었다.
강수아는 숨을 들이켜며 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그녀는 정다은에게 행운을 빈다는 듯한 눈빛을 던지고는 가방을 낚아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순식간에, 정다은과 김현석만이 마주 보게 되었다.
정다은의 손은 남자 모델의 턱에 어색하게 멈춰 있었다.
김현석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닿자,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물이 뚝뚝 떨어질 듯이 깊어졌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가 정다은의 손목을 거칠게 잡은 후, 차가운 시선으로 남자 모델을 쏘아보며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압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남자 모델은 굴러가듯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순식간에 나갔다.
정다은은 갑자기 그의 손을 뿌리치며 붉어진 손목을 문지르고는 짜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김현석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닌가?”
김현석의 목소리는 얼음이 섞인 듯 차가웠다.
“왜 이런 곳에 온 거야?”
“오고 싶어서 왔죠.”
정다은은 전혀 개의치 않는 말투에 분명한 도발이 담겨 있었다.
“김현석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김현석은 도도하고 막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음 순간, 정다은의 비명 속에서 그는 몸을 숙여 그녀를 그대로 어깨에 메고 걸어갔다.
“김현석 씨! 뭐 하는 거예요. 내려줘요! 이 나쁜 놈!”
깜짝 놀란 정다은은 분노에 차 그의 때리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김현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녀를 메고 주변의 모든 놀란 시선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클럽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롤스로이스에 그녀를 그대로 밀어 넣었다.
“출발해.”
“네, 대표님.”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정다은은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다.
“정다은!”
김현석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좌석에 다시 앉히고 소리쳤다.
“언제까지 난리 칠 거야!”
그는 그녀를 똑바로 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명확하고 차갑게 말했다.
“넌 곧 김씨 가문에 시집갈 입장이야. 내가 전에 김씨 가문의 가규집을 줬잖아. 그중 하나가 밤 10시 전에는 반드시 귀가해야 하고, 술집, 클럽 등 유흥 장소 출입은 절대 금지라는 거 쓰여 있는 거 안 봤어? 앞으로는 이런 곳에 오지 마. 오늘 일은 돌아가서 반성문을 만 자 써서 내!”
‘반성문? 가규?’
정다은은 너무 화가 나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생각했다.
전생에 그녀는 이 삼천 가지 가규에 묶여 평생을 인형처럼 살았었다.
이번 생에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먹은 그녀가 소리쳤다.
“누가 빌어먹을 반성문을 쓴대요?”
그녀는 거의 절규하듯 외쳤다.
“그 가규가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전 김현석 씨랑 결혼 안 해요!”
그 말이 끝나자 차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김현석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깊은 눈빛이 그녀를 향하더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극도로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를 갈며 한마디 말을 짜내듯 내뱉었다.
“무슨 뜻이야?”
정다은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 했던 충동이 갑자기 진정되었다.
그는 이렇게 제멋대로이고 터무니없는 자신을 약혼자로 맞이하는 걸 싫어하는데, 만약 약혼자가 그가 가장 만족해하는 동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려주면 그만 좋을 게 아닌가.
전생의 억압을 생각하며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오히려 그가 곧 결혼할 고통을 참아내게 할 것이며, 며칠간 그를 괴롭히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 뜻 없어요. 화풀이한 것 뿐이에요.”
김현석은 그녀를 잠시 심문하듯 바라보며 눈 속의 어둠이 조금 완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다.
“똑바로 앉아.”
정다은은 그가 분노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소나무처럼 곧은 자세와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며 또 전생의 숨 막히는 규범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원한과 옛날의 원한이 치밀어 올랐다.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의도적으로 좌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하이힐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비싼 캐시미어 카펫을 밟았다.
또 차창을 열어 밤바람이 그녀의 정성껏 관리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했다.
그녀는 이렇게 제멋대로, 이렇게 밝게, 이렇게 체면 불고하고 막 나가고 싶었다!
이것이 진정한 정다은이었다!
김현석은 옆자리의, 차 안의 엄격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소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정씨 가문 별장 앞에 멈췄다.
정다은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정다은.”
김현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한껏 차가웠다.
“반성문 만 자를 내일 제출해.”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운전 기사에게 차를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정다은은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길가의 돌멩이를 힘껏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