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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연시윤의 온몸이 바짝 굳었다. 임다영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부여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매달렸다. “연 대표님, 정말 사랑해요. 하룻밤을 함께 보낸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굴지 말아요. 제발 우리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시윤이 정신을 번쩍 차리며 그녀를 거칠게 떨쳐냈다. “꺼져! 당장 꺼져!” 그의 눈빛은 마치 격분한 맹수 같았다. 검게 가라앉은 시선이 칼날처럼 번뜩이며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했다. “싫어요! 안 돼요!” 임다영은 울면서도 다시 달려들어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연 대표님, 저는 결혼식이나 명분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아빠 엄마도 이미 말했어요. 연 대표님 같은 분을 사위로 들인다면... 딸이 평생 첩으로 살아도 괜찮다고요.” 마치 질긴 가죽끈처럼 그녀는 죽어도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 순간 연시윤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는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들었다. “안 돼요, 연시윤 씨!” 임다영은 겉으로는 그렇게 외쳤지만, 팔은 여전히 그의 다리를 놓지 않은 채 눈을 꼭 감았다. ‘이제 끝이구나... 임씨 가문에 발을 들인 그날부터 쌓여온 원한을 풀지도 못한 채, 오늘 여기서 다 끝내게 된 건가...’ 하지만 1분, 2분이 지나도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뭐지?’ 총을 든 연시윤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정신은 분명 또렷했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다시금 이 여자를 향해 스며들고 있었다. 임다영이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그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그녀를 밀어내고 거리를 벌렸다. “이 여자를 끌어내서 가둬.” 문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즉시 들이닥쳤다. 임다영은 죽어도 그냥 끌려갈 수 없다며 발버둥 쳤다. “연 대표님! 제 말 좀 들어봐요!” “입도 틀어막아. 그 입이 문제니까.” 연시윤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으... 으음!” 천으로 입이 틀어막힌 채, 임다영은 지하실로 끌려갔다. 문이 닫힌 후, 그녀는 방 한구석에 주저앉아 이를 갈았다. “뭐야, 이렇게 질질 끌 거면 차라리 그냥 쏴 죽이지.” 분이 풀리지 않아 베개를 집어 던졌는데, 하필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으악!” 화려하게 치장한 한 중년 여인이 막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베개가 얼굴에 그대로 부딪히며 흰 베개 커버 위로 번진 화장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임다영이 깜짝 놀라 급히 말했다. “죄, 죄송해요.” 그러나 여인은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쳤다. “시골에서 굴러온 천한 계집이라더니! 싹수라고는 하나도 없네!” 임다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게 바로 ‘천하다’는 말이었다. ‘부모 잃고 고아로 산 게 내 잘못이야?’ 그녀는 고개를 바짝 들고 싸늘하게 받아쳤다. “아줌마가 문도 안 두드리고 들어온 거잖아요. 그리고 거울 좀 봐요. 솔직히 화장 안 한 게 훨씬 나아요. 다 늙은 얼굴에 그렇게 떡칠은 왜 해요?” “뭐라고? 아줌마? 나한테 다 늙은 얼굴이라고 한 거야?” 중년 여인은 당장 기절할 기세였다. 파우치에서 손거울을 꺼내든 순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엉망진창인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중년 여인은 바로 연시윤의 어머니 김정숙 여사였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나마 품위 있는 표정을 유지했다. “네가 내 아들을 꼬드긴 그 여우년이냐?” 그제야 임다영은 눈앞의 여인이 연시윤의 어머니이자 연씨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요. 접니다. 혹시 저를 죽이러 오신 건가요?” 여전히 건방진 말투였다. 김정숙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꾹 참고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여기에 사인해.” 그녀는 무엇보다 출신과 혈통을 중시했다. 시골에서 굴러온 고아 출신의 임다영을 며느리로 맞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연시윤이 여태 단 한 번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고 그녀가 직접 골라준 약혼녀까지 외면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걸음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시골 출신 ‘천한 년’이 감히 아들 침대까지 기어올랐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김정숙은 곧바로 의사들에게 자문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며칠만, 어쩌면 몇 번만 그 여자의 도움을 빌리면 아들의 병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시윤과 백유리의 결혼식도 추진할 수 있을 터였다. ‘천한 년이어도 당분간은 상대해 줄 가치가 있어...’ 김정숙은 계약서를 임다영 앞에 탁 던졌다. 호기심에 그 계약서를 집어 든 임다영은 ‘비밀 유지 계약서’라는 타이틀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치료에만 협조하면 끝나고 200억 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때? 임씨 가문에서 이렇게 큰돈을 본 적 없었을 텐데?” 김정숙은 임다영이 부귀영화를 좇는 속물이라 확신했고 분명 덥석 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임다영은 뜻밖에도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연시윤 대표가 진짜 병적으로 여자를 멀리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거죠? 역시 소문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네... 여자를 멀리한 이유가 있다더라니...” 임다영은 뜨거웠던 어젯밤은‘갈색 병’ 덕에 나타난 이례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여겼다. 김정숙은 가슴을 꾹 눌렀다. 고혈압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었다. “이 천한 년! 네 가족 전부를 산 채로 묻어버릴까?” 임다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좋아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오히려 대환영이니까.” “너!” 김정숙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까지 뻔뻔할 줄은 몰랐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연시윤이 들어서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김정숙은 서둘러 표정을 고쳐, 자애로운 어투를 흉내 냈다. “네가 병원에 왔다는데, 엄마가 안 와볼 수 있니.” “그래도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눈빛에는 애정이라고는 찾기 어려웠다. 김정숙의 표정이 굳었다. “얘가... 엄마는 전부 너를 생각해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시윤은 그녀를 스쳐 지나 임다영 앞으로 다가가 계약서를 낚아챘다. 내용을 한 번 훑은 그는 코웃음을 쳤다. “아주 잘 아시는군요. 말씀해 보시죠. 누가 귀띔해 준 겁니까?” 그의 시선이 옆에 서 있던 정민에게로 향했다. 순간, 정민의 등줄기에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다. “대표님, 저는... 오직 대표님께만 충성합니다!” 연시윤은 배신을 누구보다 혐오했다. 그를 배신한 자의 최후는 차라리 산 채로 찢기는 편이 나았다고 할 만큼 참혹했다. 김정숙도 그걸 알았기에 서둘러 둘러댔다. “여긴 병원이잖니. 오가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모를 수가 있겠니?” “관련된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당장 잘라요.” 그는 단호하게 명령조로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난 네 엄마야! 난 전부 널 위해서 애쓰는 거라고!” 김정숙이 격분했지만 그의 눈빛이 짙은 먹구름처럼 가라앉았다. “전에는 백유리, 이번에는 또 이 여자... 정말 저를 위하신다면 그만 좀 하세요. 제 인내심 시험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김정숙 때문에, 연시윤이 여자를 극도로 혐오하게 됐을지도 몰랐다. 여색을 멀리하는 건 물론, 여자가 함부로 다가오기만 해도 역겨움을 느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김정숙은 안간힘을 다해 해명했다. “유리는 좋은 아이야. 어릴 때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고! 엄마는 유리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 연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 자리는 그 애한테만 내어줄 거야.” 연시윤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정민아, 뭐 하고 있어? 큰 사모님 집까지 모셔다드려!” “어머니, 집에서 조용히 계시죠. 두 번 다시 제 일에 참견하지 마시고요.”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하자, 김정숙은 숨기고 있던 히든카드를 꺼냈다. “아들, 네 마음대로 하더라도... 불쌍한 할머니 생각도 해야지. 임종 전에 네 결혼식에는 참석해야 하지 않겠어? 증손주 한 번 안아보는 게 평생소원인데... 그 소원 모른 척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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