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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윤아, 결정했니? 결정했으면 바로 네 이름을 신청할게!” 홍서윤은 핸드폰을 꽉 쥔 채 작게 말했다. “선생님, 저 결정했어요.” 홍서윤은 UIA 세계 건축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이 상은 업계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상이었던지라 바로 유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홍서윤은 옷장 깊숙이 넣어둔 상자를 꺼내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와 최태준의 사진첩이 있었다. 가장 앞장에는 열일곱 살의 최태준과 일곱 살의 홍서윤이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소년은 농구 골대 아래서 높이 뛰어올랐고 가느다란 허리와 선명한 복근이 드러났다. 홍서윤이 거의 공을 잡을 뻔한 순간 최태준은 일부러 방향을 확 틀어 한 손으로 덩크슛을 날렸다. 그녀는 최태준의 화려한 동작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최태준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공을 그녀에게 건넸다. “자, 내가 가르쳐줄게!” 따뜻한 햇살 아래 최태준은 한 번 또 한 번 인내심 있게 가르쳐줬고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 순간은 홍서윤에게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영원하길 바랐지만 그 기억은 고통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기억 속의 최태준은 아버지의 친구였고 아버지는 최태준을 아주 신뢰했으며 종종 집에 찾아와 놀다 가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사고로 홍씨 가문은 파산했고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며 재산은 남들에게 갈라져 다들 홍서윤을 짐 취급하면서 아무도 떠안으려 하지 않아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최태준이 다시 그녀를 최씨 가문에 데려온 것이었다. 그는 홍서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부으며 편애해 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최태준은 항상 홍서윤의 기분을 빠르게 알아채고 곁에 있어 주며 홍서윤을 웃게 해주었다. 최씨 가문 사람들이 홍서윤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기에 가문을 손에 넣자마자 아무도 홍서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고 험한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루하루 커가며 겪는 모든 고민의 순간마다 홍서윤의 곁에는 항상 최태준이 있었다. 홍서윤은 최태준의 그늘 아래서 자라며 단 한 번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최태준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어느새 자신이 최태준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능 결과가 나오던 날 최태준은 특별히 모든 일을 미뤄두고 홍서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다. 그날 밤 홍서윤은 일부러 술에 취한 척하며 최태준의 어깨에 팔을 올린 후 품에 안겨 고백했다. 최태준은 그런 홍서윤을 바로 밀어내며 처음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홍서윤, 잘 봐. 난 네 아저씨야!” 홍서윤은 물 한 컵을 받아 자기 얼굴에 쏟아부으며 자신이 제정신임을 증명해 보였다. “알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아저씨예요. 아저씨가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저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고는 믿지 않아요!” 최태준은 깊은숨을 내쉬며 미간을 구겼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넌 아직 어려서 착각하는 거야. 언젠가는 그 감정이 뭔지 알게 될 테니까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할게.” 홍서윤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최태준을 빤히 보았다. 어떻게든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착각 아니라고요! 전 지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아저씨, 전 아저씨랑 연인 사이가 되고 싶어요!” 참다못한 최태준은 결국 홍서윤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고 두 사람의 사이에는 서늘한 한기가 불었다. 그날 이후, 최태준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태준은 홍서윤에게 주던 모든 애정과 편애를 거두었고 무뚝뚝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인내심마저 사라져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했다. 심지어 그녀가 먼저 다가가도 최태준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홍서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최태준도 분명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4년 동안 고집을 부리며 버틴 끝에 홍서윤은 대학을 졸업했다. 홍서윤은 생각했다. 자신은 이제 스물두 살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버텼으니 아무리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라고 한들 지금은 녹았을 거라고. 다시 최태준에게 고백하려고 했지만 최태준이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들킨 순간에도 최태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여자의 입술을 부드럽게 닦아 준 뒤 홍서윤 앞으로 데려왔다. “유아람, 내 여자친구야. 넌... 그냥 언니라고 불러.” 그는 유아람을 품에 안은 채 다정하게 계속 소개했다. “여기는 홍서윤.” 최태준은 홍서윤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고 마치 홍서윤이 그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인 듯 행동하며 더 이상 엮이지 말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참아왔던 감정이 어느 한순간 결국 폭발하고 말았고 홍서윤은 최태준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혹시 자신을 피하려고 일부러 여자친구를 사귄 거냐고, 자신이 귀찮아져서 일부러 떠나게 하려고 눈치를 주는 거냐고... 정말로 자신을 버릴 거냐고 묻고 싶었다. 결국 이 말들을 쏟아냈고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최태준의 대답을 들은 홍서윤의 마음은 완전히 절망으로 가라앉았다. 그날 최태준의 차갑고도 싸늘한 눈빛, 그리고 단호하고도 무정한 말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람이야. 지금도, 앞으로도 그래! 그리고 넌... 넌 그냥 내가 마음 약해져 데려다 키운 애완동물 같은 거야. 언제든 거슬리면 이 집에서 쫓아낼 수 있는 그런 존재지.” 이 말을 들은 홍서윤의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방에 틀어박혀 사진첩을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홍서윤은 자신이 대회에서 수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 또한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며 그녀를 설득했다. 아직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홍서윤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이 사실을 최태준에게도 알리고 싶었고 최태준의 의견도 묻고 싶었다. 홍서윤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작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설령 최태준과 유아람이 애정행각을 하고 있어도 홍서윤은 자신을 달래며 계속해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릴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날 저녁, 홍서윤은 회사로 찾아갔다가 최태준과 유아람이 사무실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마는데... 홍서윤은 그제야 모든 게 끝났음을 깨달았고 더는 자신을 속일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완전히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다시는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아파졌고 그제야 최태준은 더 이상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그를 놓아주고 자신도 놓아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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