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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최태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오싹하고도 고요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턱은 높이 든 채 우연을 위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서윤이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그랬다. 최태준은 홍서윤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고 최씨 가문에서 나올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여하간에 자신이 그간 제공해온 호화로운 삶에 적응되어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여태 좋은 것이 있으면 항상 홍서윤에게 먼저 주면서 최씨 가문에서 애지중지하는 아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검소한 생활에서 사치스러운 생활로 가기는 쉬워도 사치에서 검소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사람의 마음이란 대부분 똑같은 것이고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 학과의 교수는 홍서윤에게 중신 그룹에 관련된 임무를 맡겼다. 경서대는 중신 그룹이 채용할 때 최우선 대학교는 아니었고 2순위 정도라 이번에 처음으로 경서대를 방문해 짧은 홍보와 채용 설명회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중신 그룹처럼 오래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단순한 홍보 형식의 설명회일 뿐인데도 각 대학의 우수 인재들이 몰려들어 강의실을 꽉 채웠다. 교수는 홍서윤에게 서류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중신에서 낸 과제야. 네가 한번 해보면 좋겠다. 중신은 에른국에서도 알아주고 자회사도 있으니까 거기 채용 요구도 알아볼 겸 연습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홍서윤은 서류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서윤은 서류를 안고 나갔다. 다음 날 지정된 장소로 면접 보러 갔고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대기실로 갔다. 홍서윤은 중간 순서였다. 차례가 되어 들어가자 면접관의 얼굴을 보고 순간 굳어졌다. 최태준은 이미 홍서윤의 이력서를 먼저 본 상태였던지라 시선을 들어 홍서윤을 위아래 훑으며 미묘한 눈빛을 했다. 무난한 정장 차림은 그녀의 몸선을 더욱 완벽하게 드러냈고 늘씬한 다리에는 군살도 없었으며 피부는 희고 매끄러웠다. 얼굴에는 연한 화장을 했는데 오히려 이목구비가 더 눈부시게 빛났고 사슴 같은 눈망울은 반짝반짝 빛나 그 안에는 아직 약간의 풋풋함과 촉촉함이 섞여 있었다. 최태준은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하죠.” 홍서윤은 서류를 쥔 손이 잠시 굳었지만 몇 초 후 정신을 차리고 이력서를 건넸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말한 뒤 서류 마지막에 있는 과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물의 형태를 담은 화단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버려진 건축물들은 사실 질감도 뛰어나고 공간은 조금만 손보면 식물이 본래 자리를 따라 위로 자라면서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차가운 분위기와 반전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뒤쪽은 산업적인 공장의 차가움이 느껴지니 여기에 식물만이 가진 화사함과 생명력을 활용해야 버려진 건축물도 원래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 최태준은 홍서윤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잠시 넋을 잃고 보았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설명하는 소녀에게서는 온몸에 빛이 나는 듯했고 평소와 달리 눈빛과 표정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원래 최태준은 홍서윤이 이 전공을 택한 것은 단순한 충동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깊이 파고들고 노력해온 줄은 몰랐다. 홍서윤은 입술을 살짝 핥으며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결국 마무리 멘트를 했다. 최태준은 조용히 홍서윤을 보았다. 홍서윤은 그저 들어왔을 때 자신을 잠깐 보았을 뿐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느껴지는 불쾌감에 미간을 살짝 구기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밀어내고 공적인 태도로 홍서윤에게 돌아가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 학생 괜찮네요. 그런데 이 디자인 설명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옆자리에 앉은 다른 면접관이 홍서윤을 칭찬하며 중얼거렸다. 이내 눈동자를 굴리더니 무언가 떠올리며 말했다. “아, 그래! 이 학생 작품 소개가 UIA 대회 금상 수상작과 많이 비슷하네요. 혹시 이 학생이 그 금상의 주인공은 아닐까 했는데 이력서에는 안 적혀 있네요.” 면접관은 홍서윤의 이력서를 넘겨보며 의아한 듯 말했다. 최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도 당연히 그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알고 있었고 홍서윤이 건축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었지만 금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한테 수상자 리스트가 있으니 면접 끝나고 확인해보면 알게 되겠죠.” ... 건물을 나서며 홍서윤은 한숨을 내쉰 후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요란하게 붉은 롤스로이스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린 사람을 보자 홍서윤의 얼굴이 곧바로 차갑게 굳어버렸다. 유지욱도 여기서 홍서윤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지난번 자신을 그렇게 치욕스럽게 만들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얼굴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짜증이 치밀었다. 홍서윤은 최태준 덕분에 유지욱이 무사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지라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에 홍서윤은 무시하고 그대로 갈 길을 가버리려 했지만 유지욱은 차에서 내려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으며 억지로 차에 태우려 했다. 홍서윤은 바로 저항을 했고 주위의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지욱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아람을 엄청 사랑하는 최태준이 있지 않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최태준이 도와줄 것이니 뭘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 손 놔.” 이때 차갑고도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서 홍서윤의 어깨에 커다란 손이 올라오더니 품 안에 감싸버렸다. 익숙한 향기를 맡은 홍서윤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고 어색하게 최태준의 손을 뿌리쳤다. 최태준은 그런 홍서윤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감방에 가고 싶은 건가?” 최태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유지욱은 최태준이 불쑥 나타난 것도 놀라웠지만 여전히 홍서윤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모습에 더 놀라고 말았다. 안색이 여러 번 변하다가 결국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오해, 오해예요. 전 그냥 홍서윤 씨에게 사과하려고 온 건데 자꾸만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예요.” 최태준은 싸늘하게 말했다. “꺼져.” 유지욱은 결국 초라하게 떠났다. 그럼에도 홍서윤은 최태준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최태준이 아니었다면 유지욱이 이 자리에 있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고 마침 비서와 어깨를 스치게 되었다. “대표님, 이건 진 대표님께서 전해드리라고 한 UIA 대회 수상자 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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