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화면을 가득 채운 건 선홍빛의 피였다.
그 장면은 공포영화처럼 과장되어 보였지만 박재현은 이 모든 게 전부 고성은에게 일어난 실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그의 손은 어느새 주먹이 쥐어졌고 손등에는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임준기는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박재현의 긴장된 등 너머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화면에서는 미세한 소음과 남자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왔고 박재현의 시선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역겨운 도매뱀이 미끈거리며 바닥을 기어 고성은의 몸으로 천천히 기어오르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고성은은 몸을 덜덜 떨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박재현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잡힌 듯 비틀어지며 조여졌다.
아팠다.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변태적인 흉악범이 칼을 고성은의 얼굴에 대더니 다음엔 가슴으로 옮겨졌다.
한 개의 단추가 풀렸다.
곧이어 두 번째 단추도 풀렸다.
동작은 매우 느렸고 조롱 섞인 모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박재현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발끝에서 정수리로 치솟았다.
화면 속에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모욕감도 눈물도 없었다.
두 눈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흉악범이 칼로 팔에 긋자 선홍빛 피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며 바닥을 적셨고 그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충격이었다.
박재현은 입에서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성은은 울지 않았다.
비굴하게 빌지도 않았다.
그런 취급을 받고도 피투성이가 되어도 몸을 곧게 세운 채 정신을 잡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고집은 마치 가장 무딘 칼처럼 박재현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차라리 울었으면, 빌었으면, 평범한 사람처럼 무너졌으면 좋을 것을...
어떤 상황에서든 참을성과 침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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