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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한서영은 잠시 멈칫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가져갔다. “나 안 샀어. 항공사에서 할인 문자 온 거겠지.” 주석현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한서영이 이미 이야기를 닫아 두었다는 걸 느끼고 말을 삼켰다. 결국... 한서영은 그를 속인 적이 없었다. 주석현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고 욕실로 향하려 했지만 한서영이 다시 불렀다. 그녀는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등에 유리 파편이 스쳤어. 약 발라줄게.” 주석현은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외투를 벗었다. 얇게 길게 난 상처가 드러났다.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등이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서영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면봉으로 소독약을 바르자, 약 향과 함께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주석현은 오늘 받은 편지가 떠올렸다. “서영아, 오늘 그 편지는...” “이따 샤워하고 다시 닦아. 안 그러면 덧나. 싸울 거면 조심 좀 해. 더 다치지 마. 이제는 약 발라줄 사람 없으니까.” 한서영의 말은 담담했지만 묘하게 멀었다. 생각이 끊긴 주석현은 그녀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듣지 못했다. “뭐라고?” 한서영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붕대를 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머리를 말리고 나오자, 주석현도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는 익숙하게 한서영의 허리를 감고 입술을 가까이 했다. 한서영은 고개를 살짝 비켜, 그 뜨거운 입맞춤을 피했다. “생리 중이야. 그냥 빨리 자고 싶어.” 주석현은 더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불을 고르게 덮어주고 불을 껐다. 다음 날 아침, 햇빛은 밝았다. 한서영이 세면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내려가 보니 소지원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주석현은 문가에 기대 서 있었고 목소리에는 늘 그렇듯 짜증이 묻어 있었다. “여기 왜 왔어.” 소지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친구들이 먼저 나섰다. “지원이가 그러는데, 네가 어제 구해줬다며? 고마워서 직접 와서 인사하겠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지원은 커다란 꽃다발과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을 꺼냈다. “석현아, 어제 고마웠어. 작은 정성이야.” 주석현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소지원은 곧바로 꽃을 한서영에게 건넸다. 겉보기엔 부드러웠지만, 말의 결은 분명했다. “한서영, 이건 석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줄리엣 장미야. 꽃병에 꽂아줘.” 그 순간, 주석현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건 네가 좋아하는 거지. 내 취향이라고 말하지 마. 그리고 서영이는 내 아내야. 심부름 시키듯 말하지 마.” 거실 내부의 공기가 단번에 차가워졌다. 하지만 한서영의 표정은 고요했다. 그녀는 장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 꽃의 이름을 알았다. 줄리엣? 소지원이 좋아하던 꽃. 그래서 주석현이 그 품종을 온실에서 오래 길렀던 것이었다. 한서영은 말없이 꽃을 가사도우미에게 건네며 말했다. “2층 진열장에 있는 꽃병 몇 개 가져와 주세요.” 소지원의 눈빛이 스치듯 바뀌었지만 한서영은 그대로 아침을 들고 발코니로 향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실의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렸다. “석현아, 이거 내가 중학교 때 접었던 종이학 맞지? 아직도 유리 케이스에 넣어두고 있었네? 그렇게 좋아하면 내일 더 접어줄까?” “어? 이 바비 인형 세트가 왜 여기 있어? 나 그거 버렸었는데 네가 가져갔던 거야?” “아, 이거 우리 향운산에서 주웠던 단풍잎이지? 책갈피로 만든 거네... 이렇게 오래 두고 있었구나...” 그 소리를 들으며 한서영은 이 집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이 물건들이 뭐냐고 물었었다. “유치원 때 사촌동생이 준 거야.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둔 거지.” 그 말을, 그때는 정말 믿었다. 그래서 그 눈 속에 잠겨 있던 감정도 보지 못했다. 사랑, 미련, 상처, 놓지 못한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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