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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예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화가 잔뜩 난 남자가 있었다. 그런 남자를 보며 하예원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난 윤희설 씨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윤수아는 씩씩대며 최도경을 따라 들어와 하예원을 가리켰다. “하예원, 이 악랄한 년아! 희설이가 사고 났을 때 넌 계속 도경 오빠가 못 가게 막아섰잖아. 그런데 희설이가 입원한 후에도 찾아와 괴롭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람이 못 됐어?! 얼른 나가. 아무도 널 환영하지 않으니까.” 윤희설은 미간을 구리며 윤수아를 혼냈다. “수아야, 그만해.” 시선을 옮겨 윤희설은 최도경을 보며 말했다. “도경아, 네가 하예원 씨 오해하고 있는 거야. 하예원 씨는 정말로 그냥 날 보러 왔어. 그 김에 나한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고.” 최도경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도움이라고?” 윤희설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응, 노서연 씨 일 말이야.” 말하면서 윤희설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예원 씨, 미안해요. 제가 도와주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래요.” 이내 최도경을 보며 말했다. “도경이가 거절한 일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거든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설득하긴 어려워요.” 윤희설은 일부러 하예원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저 최도경의 앞에서 사실만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하예원도 더는 부탁할 수 없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전 이만 가볼 테니까 푹 쉬어요.” 최도경의 옆을 지나칠 때 하예원은 최도경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최도경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최도경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 순간 최도경은 하예원의 손목을 잡았다. 하예원은 미간을 구긴 채 자신의 손목을 잡은 최도경의 손을 보았다. “최도경, 뭐 하는 거야?” 최도경은 하예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윤희설을 보며 말했다. “나도 가볼게.” 윤희설이 대답하기도 전에 최도경은 하예원의 손목을 잡은 채 병실을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윤수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경 오빠, 어디 가요? 도경 오빠...” 최도경은 윤수아를 무시한 채 병실을 나가버렸다. 윤수아는 화가 나 표정을 한껏 구기더니 이를 빠득 갈았다. “하예원, 이 여우가! 정말 짜증 나! 지금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감히 도경 오빠한테 꼬리 친 거잖아!” 이내 고개를 홱 돌려 침대에 앉아 있는 윤희설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희설아, 도경 오빠를 그냥 보내면 어떡해! 붙잡았어야지!” 그러나 윤희설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 나랑 있고 싶었다면 있었을 거야. 나가고 싶다는 사람을 왜 붙잡아서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해?” “희설아!” 윤수아는 여전히 윤희설 일에 참견하고 있었다. “넌 예전에도 그랬어. 아무것도 빼앗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지. 그러니까 저런 년이 나타나서 네 자리를 빼앗는 거잖아! 삼 년 전에도 그래. 네가 조금만 주동적이었어도 지금 너와 도경 오빠 사이엔 아이도 있었을 거야!” 윤희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창밖만 멍하니 보았다. 윤수아는 이내 또 입을 열었다. “그래도 도경 오빠가 3년 전보다 잘해주긴 하지... 희설아, 행복은 네가 쟁취해야 하는 거야. 하예원이 비록 뻔뻔하게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도경 오빠 옆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잖아. 과정은 결과보다 중요하지 않아. 영원히.” 윤희설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중얼거렸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 한편 어느 한구석으로 끌려온 하예원은 차가운 벽으로 밀쳐졌다.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엄청난 위압감에 점차 숨이 막혀왔다. “하예원.” 최도경은 서늘한 눈빛으로 하예원을 빤히 보았다. 하예원은 그가 왜 이러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희설이한테 무슨 말을 했지?” 하예원은 피하려고 했지만 최도경이 억지로 그녀의 턱을 잡으며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눈이 마주치자 하예원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하예원, 대답해.” 서늘한 목소리와 엄청난 위압감이 밀려오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낯선 것 같기도 하면서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꼭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예원은 살짝 풀려버린 눈으로 분노가 들끓고 있는 남자를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최도경,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야?” 최도경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뭐?” 하예원은 최도경의 눈을 빤히 보았다. “대체 뭘 두려워하는 거냐고.” “뭘 두려워하냐고?” 최도경은 웃는 둥 마는 둥 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비꼬았다. “그럼 네가 말해 봐. 내가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하예원도 솔직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왜 이런 말을 꺼낸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직감적으로, 또 어쩌면... 최도경의 아우라가 너무도 강대해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병실로 찾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도착했잖아. 그리고 꼭 내가 당신 첫사랑을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쳐다봤지...” 하예원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난 약점이 가득 노출된 상황이야. 그 약점이 뭔지 당신도 알면서 내가 뭐하러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괴롭히겠어? 눈이 나쁜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이렇게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걸 당신이 모른다는 게 난 이해가 안 가...” 하예원은 최도경을 위아래 훑어보며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시대에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의 머리가 이렇게 나빠도 되는 건가? 아니면 다 그런 거야?” 그녀의 말은 최도경이 눈도 나쁠 뿐만 아니라 멍청하다고 대놓고 욕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도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빠르게 최도경의 표정이 굳어갔고 차갑게 말했다. “하예원, 그러는 넌? 지금 날 자극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거 알고 있을 텐데?”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당신은 날 도와주지 않을 거잖아. 그런데 내가 왜 굳이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해야 해?” 하예원은 다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난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다들 내가 뭘 했다고 생각하잖아. 날 악당으로 만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진짜 악당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는 것보단 낫잖아.” 최도경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될 대로 되라는 거야?” “맞아.” 하예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처럼 나긋하면서도 여유가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도 감미로웠다. “당신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꼴 못 지켜보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행복하게 살 생각은 하지 마.” 최도경은 싸늘해진 하예원의 눈빛을 보며 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무언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예원은 최도경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눈빛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눈빛이었고 괴이했다. 분명 그녀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차가운 눈빛에서는 온화함이 아주 조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예원이 자세히 보려던 때 최도경은 하예원의 턱을 놓아주며 평소와 같은 무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조금 전 하예원이 본 것이 전부 착각인 것처럼 말이다. “행복하게 살 생각은 하지 말라고?” 최도경은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이상하게도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내 행복을 어떻게 방해할 건데?” 하예원은 다소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자신을 보며 화를 내는 최도경을 보며 홧김에 한 말이었다. 최도경이 도와주지 않으니 하예원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식으로 화풀이하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최도경은 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하게 하예원을 보고 있었다. 이런 남자를 보니 하예원은 당황스러움이 밀려왔고 꼭 최도경이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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