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5화

서은수는 온몸이 확 굳어버리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전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덮친 남자를 거칠게 밀쳐내며 침대 머리맡으로 기어 올라갔다. 구도영은 잠시 그녀를 쏘아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직도 화났어?”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구도운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술에 취한 듯 나른한 목소리마저도 빈틈이 없었다. 만약 구도운이 강승아를 위해 몸을 깨끗이 지켰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녀는 아마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도영이 다시 몸을 숙여 다가왔다. 두 손을 그녀의 등 뒤에 짚고 코끝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이미 설명했잖아. 내가 승아 좋아했다면 너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구도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그때 서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러곤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토하느라 눈이 붉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곧이어 서은수는 남자를 밀쳐내고 화장실로 뛰쳐 갔다. 구도영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화장실 안에서 서은수는 벽에 기대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문밖에서 갑자기 구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들었냐? 저 여자 구역질하는 거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이어서 놀란 듯한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중 한 남자가 크게 외쳤다. “도영아, 너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나중에 진실 밝혀지고 귀찮아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서은수는 순간 등골이 뻣뻣하게 굳고 사지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제야 알아챘다. 구도영의 휴대폰이 줄곧 통화 중이었다는 것을. 강승아의 목소리가 곧이어 귓가에 들어왔다. “구도운, 구도영! 너희들 적당히 해.” “뭘 적당히 해?” 구도운이 차갑게 되물었다. “걔가 널 얼마나 오랫동안 괴롭혔는데. 이건 당연한 벌이야.” 강승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만약 은수가 정말 임신했다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두 남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전화기 너머 구도운의 목소리가 유난히 냉정했다. “설령 진짜 임신했더라도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도영이 네 생각은 어때?” 구도영은 목울대가 두어 번 크게 움직였다. “당, 당연하지.” 왠지 모르게 그의 심장이 순간 덜컥했다. 곧이어 서은수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구도영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는 재빨리 전화를 끊고 서은수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은수야?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 설마 너... 임신했어?” 서은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니. 그냥 위경련이 발작했어...” 다음 날 아침 일찍 서은수는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가서 유산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상담을 하던 주임교수는 그녀를 알아보고 설득하듯 말했다. “은수야, 태아는 7주째에 이미 심장이 뛰고 있어. 여러 지표도 다 좋고. 정말 지울 거니?” 서은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표정 변화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 지울 거예요.” 병원을 나섰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다. 구도운의 전화가 걸려왔고 곧이어 그의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서은수를 조수석으로 이끌었다. “가자, 밥 먹으러.” 한길 내내 침묵이 흘렀고 구도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차 안에는 학생 시절 강승아가 가장 좋아했고, 동시에 서은수가 가장 싫어했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강승아와 구도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승아는 테이블 위의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수야, 어제는 내가 너무 무례했지. 이 케이크는 사과하는 의미로 일부러 줄 서서 산 유명한 케이크야. 꼭 한번 먹어봐.” 식사 자리에서 강승아는 계속해서 셋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도운이랑 도영이는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아꼈지. 그때 우리끼리 소꿉놀이하면서 둘 다 내 신랑 해주겠다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한번은 내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 도운이가 내 발밑에 엎드려서 방석이 되어줬지 뭐야.” “중학교 때 짓궂은 남자애들한테 둘러싸였을 때도 도운이랑 도영이가 날 지켜주려다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꽤 오래 누워 있었던 적도 있고.” 구도운과 구도영은 웃으며 맞장구쳤다. 셋은 즐겁게 떠들었지만 서은수만은 줄곧 침묵했다. 강승아는 문득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은수 넌 왜 말이 없어? 나한테 불만 있는 거니?” “알아, 대학교 때 우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었잖아. 그래도 이제 도운이랑 결혼할 테니 우리 모두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강승아는 수중의 술잔을 들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서은수를 바라봤다. 서은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옷깃을 잡아끌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팔뚝에 꽤 넓은 부위로 붉은 두드러기가 끔찍하게 돋아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잡으려 애썼다. “뭐야? 알러지 반응이야?” 구도운이 벌떡 일어나 그녀의 가방을 잡으려 했다. 서은수는 땅콩 알레르기가 매우 심했다. 평소에 매우 조심하고 있지만 실수로 땅콩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 구급 조치가 늦어질까 봐 가방에 항상 응급용 에피네프린 주사를 넣고 다녔다. 그것은 위급한 순간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도구였다. 서은수가 이제 막 에피네프린 주사를 손에 잡았을 때, 강승아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운아... 나 너무 힘들어...”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옷깃을 움켜쥐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뒤로 쓰러졌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