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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아침 일찍 변호사가 이혼 서류를 가져왔다. “임유아 씨, 모든 조항은 의뢰하신 요구대로 작성되었어요. 부부 양측 서명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데 혹시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보세요.” 임유아가 서류 몇 장을 훑어보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대로 진행하세요, 차 변호사님. 수수료는 곧 계좌로 입금될 테니 확인해보세요.”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천우진이 불쑥 문 앞에 나타났다. “임유아, 이 남자 누구야?”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억압적이었으며 목소리에는 서늘함이 묻어나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다시 캐묻기도 전에 차경표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서류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임유아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하려 했다. 그의 곁을 지나치는 순간, 이 남자가 갑자기 가녀린 손목을 낚아챘다. “놔! 아프단 말이야.”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혐오감이 가득했다. 천우진은 힘을 살짝 풀며 그대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직도 화났어? 말 좀 듣자. 투정 그만 부려. 응?”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지만, 임유아는 그 다정한 음성에서 촘촘히 뻗어 나오는 역겨움을 느꼈다. 차라리 천우진이 거칠게 나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예전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 그가 배신해놓고 이제 와서 대체 누구한테 이딴 모습을 보이는 걸까? 임유아는 더 이상 왜 그랬는지 생각하기도 싫고 목놓아 울며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천우진.” 그녀는 힘겹게 천우진의 품에서 벗어나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나 다치지 마. 더러우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침착했던 천우진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유아야, 그날 내가 분명히 설명했잖아. 내가 사랑하는 건 너 하나뿐이라니까.” 천우진은 자신이 이미 임유아를 위해 딩크족임을 선언하고 심지어 부모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인내하며 충분히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여겼다. 똑같은 쌍둥이 자매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임채아가 더 배려심이 많은 것 같았다. 임유아는 그저 억지를 부리고 괜히 투정만 부리는 여자였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화 풀릴 건데?” “여기 사인하고....” 임유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천우진이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 정보를 확인하더니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채아야, 왜 그래? 아기가 또 울어?”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췄고, 눈가에는 갓난아기의 아빠가 된 기쁨이 어려 있었다. 전화 너머에서 임채아가 안쓰럽게 울먹였다. “오빠, 곧 태풍 온다는데... 나랑 아기한테 와 줄 수 있어?” “그래, 아기랑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무서워하지 말고. 곧 갈게.” 천우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밖에서 번개가 요란하게 쳤다. 창문을 흔드는 태풍에 커튼이 이리저리 날리고 창밖에서 나무가 꺾여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힐끗 쳐다볼 뿐 망설임 없이 말했다. “유아야, 난 일단 채아랑 아기 보러 가야겠어. 혼자 문단속 잘해.” 그가 말을 잇는 짧은 순간, 임유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이혼 서류를 조용히 내밀었다. “가봐도 돼. 그 전에 이것부터 사인해줘.” 임유아는 문을 막아서며 단호한 표정 속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천우진이 의아한 얼굴로 서류를 넘겨보려 했지만 휴대폰이 또다시 울려서 우왕좌왕했다. 한편으로 임채아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달래면서 다른 한편 펜을 들어 서류에 사인했다. 무슨 내용인지 살필 겨를조차 없이... 사인을 마친 후 임유아의 입가에 석연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심지어 쿨하게 대문까지 열어주었다. “가봐, 얼른. 채아 기다리게 하지 말고.” 천우진의 차가 멀어져간 후, 임유아는 와인을 따서 한 잔 들이켰다. 마침내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하는 의미였다. 손가락 끝으로 이혼 서류의 서명을 쓸어내리며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천우진, 너는 말로만 대를 잇기 위해서라고 할 뿐 정작 네 행동은 임채아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네...” 천우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태풍 속으로 나선 그 순간,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 이 남자에게 임채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임채아를 택하면서 임유아에겐 문단속 잘하란 그 한마디만 내던졌다. 이런 차별적인 태도는 누가 봐도 임유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을 비웃으며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 씁쓸함을 느끼려 애썼지만 한참 지나도록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어 무감각해진 것만 같았다. 천우진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인데 넌 대체 누구를 사랑하는 거야?”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고 이제 무의미해졌으니까. 그날 밤, 임채아는 일부러 임유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은 우진 오빠랑 함께한 2주년 기념일이자 우리 아기 첫돌이야. 돌잔치는 천씨 가문 본가에서 열리니까 언니 꼭 와줘!] 임유아는 [2주년] 이라는 텍스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무려 2년이나 감쪽같이 속아왔고 무수한 낮과 밤을 딴 사람과 함께 천우진을 공유했다.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고통이 밀려오자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 눈물이 화면 위로 떨어져 텍스트가 흐릿해졌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 [알았어. 꼭 갈게.] 괴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임채아가 먼저 도발해왔는데 어찌 안 갈 수 있을까? 이참에 속 시원하게라도 풀어야 억울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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