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장 누굴 탓하겠어

배지훈의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깨어있기는 하지만 눈빛이 많이 공허했다. 내 발걸음 소리를 들어서야 머리를 돌렸고 눈에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연아." 그의 목소리는 쉬었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가 뭘 떠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침대 옆에 서서 고개를 떨군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배지훈은 야위었다. 아무리 비싼 영양 수액으로도 그의 건강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기에 얼굴이 많이 초췌해졌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끝내는 말하지 못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 바라보았는데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하연아, 미안해, 그때는 정말 기억 안 났어." "내가 그때 정신이 이상했던 거 너도 알잖아, 맞지?" 그가 버둥거리며 앉으려 했지만 나는 그를 부추기지 않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정신이 이상해진 게 모두 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탓하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용서도 되지도 않았다. "하연아, 그러니까 나 용서할 거지?" "난, 정말 민여정이 넌 줄 알았어, 의사한테 들으니까 걔가 나한테 약 썼다고 그러더라고." "하연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는 말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배지훈이 지난번에 언제 울었던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정말 불쌍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그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자리에 굳어버린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나는 겨우 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훈아, 미안해, 네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알아." 배지훈은 벌떡 머리를 들었고 희망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 용서하는 거지, 맞지?" "미안해." 나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고 더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나도 용서할 수 없었다. 우리 둘이 가까이 있지만 더는 서로를 만질 수 없는 것 같았다. 배지훈은 입을 뻥긋거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내가 떠나려고 돌아섰고 손잡이에 손이 닿았는데 배지훈이 갑자기 울부짖었다. "강하연, 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