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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준아.” 한미주의 나긋한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조신하게 서 있었다.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그녀가 막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발이 미끄러지며 촛대를 건드렸고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어 흩어진 사진 위로 번져갔다. 서강민과 임지현의 영정사진이 불길 속에서 서서히 재로 변해갔다. 서강준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지만 눈에 눈물이 맺힌 한미주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그녀의 놀라 허둥대는 모습이 임지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강준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입술을 깨물며 한미주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화내지 마.” 서강준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다가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네 탓 아니야.” 그 광경은 날카로운 칼처럼 임지안의 심장을 찔렀다. 그녀는 경호원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달려가 서강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서강준, 정신 좀 차려!”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이 여자는 형편없는 대체품일 뿐이야. 내 언니가 아니라고!” 서강준의 눈빛이 차갑게 식으며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뼈마디가 삐걱거릴 만큼 강한 힘이었다. 거칠고 쉰 듯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나도 알아, 지현이가 아니라는 거. 그게 뭐? 그렇다고 네가 지현이를 돌려줄 수 있어?” 임지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시야를 뒤덮었다. 가까이 있는 서강준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묶어.” 서강준은 손을 놓으며 냉정하게 명령했다. “무릎 꿇고 제대로 속죄하게 해.” 경호원들이 끈으로 임지안의 손을 묶어 그녀를 강제로 납골당 한가운데 무릎 꿇렸다. 서강준은 한미주를 데리고 나가면서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납골당의 문이 쾅 하고 닫히자 어둠이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임지안은 묶인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불타 재가 된 언니의 영정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봤지? 서강준, 이제는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 해. 곧 나도 언니한테 갈 거야. 그때 언니가 직접 말해줘. 그 가짜가 얼마나 우스운지, 응?” 납골당 밖. 서강준은 복도 끝에 서서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한미주가 다가와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대었지만 그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밀쳐냈다. “먼저 돌아가.” “강준아...” “가라고 했잖아.”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미주는 돌아섰다. 서강준은 담배를 비벼 끄며 굳게 닫힌 납골당의 문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해야 할 텐데 가슴이 텅 빈 듯 답답했다. 임지안은 납골당에서 하루 밤낮을 묶인 채 버텼고 이틀째 해 질 무렵에야 풀려났다. 온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무릎은 멍이 들고 퉁퉁 부어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도우미가 부축하려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임지안은 알고 있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임씨 가문 저택 앞. 임지안은 도로 건너편에 서서 낯익은 집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결혼 후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돌아오지 못한 집이었다. 멀리서 보기만 하려 했건만 집 안의 도우미가 그녀를 발견해 버렸다. “아가씨!” 도우미가 놀라며 소리쳤다. “정말 아가씨 맞아요?” 그 말에 부모가 달려 나왔다. “누가 너더러 오라고 했어?” 아버지 임준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지현이를 죽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돌아와?” 어머니 김선미는 더 격하게 반응하며 빗자루를 들고 그녀의 등을 내리쳤다. “꺼져! 우리 임씨 가문에 너 같은 딸은 없어!” 빗자루가 한 번, 두 번, 세 번, 등을 후려쳤지만 임지안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맞을 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흐느끼며 임지안이 대답했다. “그냥 한 번만 보고 싶었어요.” “볼 게 뭐 있어! 꺼져!” 임준호가 발로 그녀의 다리를 걷어찼다. “서씨 가문으로 돌아가!” 임지안은 진흙탕 속에 넘어지며 비와 흙물이 뒤섞여 옷이 흠뻑 젖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부모가 서 있는 방향으로 힘겹게 인사를 올리고는 돌아섰다. 비가 점점 거세졌다. 임지안은 젖은 채로 정처 없이 걸었다. 그때, 한 대의 검은 세단이 그녀 곁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며 서강준의 냉랭한 옆얼굴이 드러났다. “타.” 그는 명령하듯 말했다. 임지안은 고개를 돌리고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안 타면 내가 업어서라도 태울 거야.” 그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선택해.” 차 문이 벌컥 열렸고 임지안은 결국 조용히 차에 올랐다. 젖은 옷이 가죽시트에 물 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흠뻑 젖은 채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참 초라하네.” 서강준이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주제에, 너 같은 건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 임지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창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흐르는 강물 같았다. 차는 집으로 가지 않았고 한 고급 클럽 앞에 멈춰 섰다. “여기는 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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