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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홍시연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저녁은 돌아와서 먹을 거니까 언니가 집에서 저녁 좀 해주세요.”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 홍시연의 말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큰 걸음으로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배현민이 먼저 나를 두둔하듯 나섰다. “아마 아직 화가 안 풀린 거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분명 마음이 풀려 있을 거야.” 배지욱도 거들며 말했다. “맞아요. 성격은 좀 별로지만 요리는 끝내주잖아요. 오늘 저녁은 진짜 든든하게 먹을 수 있겠어요.” 홍시연이 반짝이며 물었다. “진짜? 너무 기대된다.” 그들 머릿속엔 여전히 내가 배현민을 사랑한다고 굳게 박혀 있는 듯했다. 심지어 그의 용서를 얻기 위해 아직 회복도 덜 된 몸을 끌고서라도 정성껏 저녁상을 차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내가 배현민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제정신이 아닌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차갑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창고로 가서 캐리어를 꺼내 들고 방으로 와 내 물건들을 하나하나 담기 시작했다. 캐리어부터 정리해 두고 배현민이 이혼에 동의하는 순간 바로 들고 나갈 생각이었다. 사실 집 안에서 진짜 내 것이라 할 만한 건 많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 몇 벌,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몇 장의 증명서류뿐이었지만 나는 빠짐없이 다 챙겨 캐리어에 넣었다. 옷장을 하나 더 열어 치마를 챙기려던 순간 치마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과 그 아래 한 장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종이를 들어 올려 무심히 살펴보았다. 홍시연이 임신 9주 차라는 검사 결과지였다. 그럼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지? 혹시 배현민일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핸드폰 전원을 켰다. 화면은 여전히 홍시연과 전남편의 대화창에 멈춰 있었다. 그곳엔 어제 홍시연이 전남편에게 보낸 문자가 남아 있었다. [나 임신했어. 두 달 전 당신 만나러 해외 갔을 때 가진 애야.] 배현민의 말대로라면 홍시연의 전남편은 꽤 극단적인 사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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