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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혼돈 속에서 서은수는 누군가가 인내심 있게 자신의 뺨을 닦아주고, 몸을 뒤집고, 면봉으로 갈라진 입술을 축여주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역광 속에서 길쭉한 실루엣이 그녀를 등지고 창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지훈아...” 그녀는 쉰 목소리로 불렀다. 남자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눈썹을 살짝 치켰다. “강지훈 아니거든!” 서은수는 그제야 알아챘다. 상대는 바로 이재욱이었다. “나 얼마나 혼수상태로 있었어?” “사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에 신선한 생화가 놓여 있고, 방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누군가가 계속 돌봐준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마 이재욱일까? 그가 온수 한 잔 건네고 곧이어 서류를 그녀의 침대 옆에 놓았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혼 서류야. 강지훈은 서명했어.” 서은수는 컵을 들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이걸 어떻게 갖고 있어?” “강지훈이 네가 계약 성사한 프로젝트들 후속 진행까지 전부 도승아에게 공을 돌렸어. 내가 이혼 서류를 계약서에 끼워 넣었고, 도승아가 강지훈 다그쳐서 내 앞에서 서명하게 만든 거야.” 이재욱은 잠시 머뭇거렸다. “네가 생사를 넘나들 때, 강지훈은 도승아 위해서 축하 파티까지 열더라. 이제 도시 전체에 도승아가 권력을 잡고 곧 실권을 장악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해.” 서은수가 생사를 넘나들 때, 강지훈은 이미 서둘러 새 애인을 위한 길을 닦고 있었다. 역시 찐 사랑은 천하무적이었다. 서은수는 이혼 서류를 꽉 쥐고 태연하게 웃었다. “괜찮아. 나도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걸 얻었거든.” 퇴원 후, 그녀는 지난 5년간의 굴욕이 담겼던 그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지훈에 관한 모든 것, 그녀는 단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다. 5년의 세월이 캐리어 하나에도 채워지지 못할 줄이야. 이제 막 캐리어를 끌고 일어나려던 순간,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강지훈이 뒤에 서서 어두운 눈빛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집 나간다는 둥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마라. 난 지금 승아한테 죄책감만 더 커져서 어떻게든 화려하고 마음 따뜻해지게 보답해주고 싶어. 하지만! 강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명분은 영원히 네 거야.” 서은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명분은 무슨. 그거 다 쓸데없는 것들이잖아.” 그는 서은수를 사랑하지 않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 한 존재이니 명분으로 그녀를 곁에 가둬두고 쓸 만 한 가치를 전부 짜내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다른 차원에서 지하 감옥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서은수는 마음대로 다루어지는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강지훈이 손을 뻗어 캐리어를 빼앗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저택에 한 번 다녀와. 엄마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대.” 서은수는 이미 마음속에 어떠한 파도도 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묵묵히 응했다. 어차피 끝내려면 깔끔하게 끝내야 한다. 저택에 갈 때마다 그녀는 시어머니 최자현이 가장 좋아하는 밤양갱을 가져갔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도승아가 고개를 숙인 채 최자현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너무 큰 사고를 쳐서 강씨 가문에 망신을 줬다고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질책이라고는 하지만 내쫓는 말은 전혀 없었다. 단지 서은수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고부간에 정을 쌓고 있는데 제가 타이밍을 못 맞췄네요?” 서은수가 문가에 기대며 희롱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불순한 말투에 최자현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은수 왔어? 어서 들어와.” 옆에 있던 도승아가 즉시 나서서 서은수가 들고 온 밤양갱을 빼앗더니 제멋대로 열어서 최자현 앞에 내밀었다. “아줌마 말씀이 맞아요. 이거라도 드시고 기분 푸세요.” 최자현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밤양갱을 한 입 먹고 서은수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은수 네가 많이 서운한 거 알아. 그래도 조금만 더 참으라고 권하고 싶구나. 남자들이란 밖에서 사교활동 하다 보면 다 한눈팔게 돼 있어. 이 바닥에서 다들 그렇게 살아. 우리 집안 체면만 손상 주지 않는다면, 너도 눈감아주렴.” 서은수는 테이블 위의 꽃을 만지작거리며 최자현을 올려다보았다. “네, 그러시겠죠. 그해 아버님 첫 아내분이 눈감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저랑 이야기하는 사람도 어머님이 아니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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