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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다행히 이번에는 식당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밥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온 후 허이설은 곧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중에 오후 수업이 다음 주로 미뤄졌다는 문자를 받았기에 바로 집에 갈 수 있었다. 허이설이 짐을 다 챙기자 드라마를 보던 윤가을이 컴퓨터를 끄며 배웅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밥 먹을 때 만나지 않은 사람들을 학교 정문을 나서자마자 만나고 말았다. 용제하와 추다희가 함께 서 있었다. 추다희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용제하에게 뭔가 얘기하고 있었는데 무척 가까워 보였다. 용제하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문상준과 엄형수도 있었지만 용제하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허이설의 시선이 용제하에게 잠깐 향했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옆에 있던 윤가을이 중얼거렸다. 허이설이 윤가을을 끌고 못 본 척 지나가려던 그때 문상준이 큰 소리로 윤가을을 불렀다. “윤가을, 내가 게임 같이하자고 했는데 왜 답장 안 해?” 윤가을이 눈을 흘겼다. “네가 부르면 무조건 답해야 해? 네가 뭔데?” 문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점수 올려줄 때는 오빠라고 부르더니.” “점수는 점수고 지금은 지금이야.” 문상준이 다가오자 용제하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들 쪽으로 향했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허이설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 문상준이 윤가을의 손에 든 캐리어를 보며 물었다. “집에 가려고?” “이설이 가는데 배웅해주려고.” 문상준의 시선이 뒤에 있는 용제하에게 향했다. 하경대학교 게시판에 허이설이 용제하를 쫓아다니며 쏟은 노력을 정리한 글이 있었다. 무려 백 가지가 넘었다. 문상준은 그 글을 읽은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중에 허이설이 용제하 때문에 집에도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익명 제보에 따르면 허이설의 집이 하경대학교에서 30분 거리인데 용제하가 명절에 학교에 남으니 허이설도 집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여 남자를 쫓느라 집에도 안 가는 불효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침 문상준이 예전에 이 얘기를 용제하에게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용제하는 별 감흥 없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딴 한심한 글 좀 보지 마. 머리 멍청해져.” 문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이설도 집에 가긴 가는구나.” 추다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설아, 우리 토요일에 모임 있는데 너도 올래?” 허이설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너희 둘 모임에나 갈 정도로 한가해 보여?’ “아니. 집에 갈 거야.” “너희 집 여기서 30분 거리 아니야?” 추다희가 다가왔다. “우리 기숙사 애들 다 올 텐데 너도 와.” 윤가을이 추다희를 보며 말했다. “이설이 집에 일이 있어서 안 돼. 대체 무슨 모임이길래 룸메이트들까지 다 가야 하는 건데?” 이 한마디는 둘 사이가 그저 룸메이트뿐이라는 걸 명확히 보여줬다. 추다희는 화난 기색 없이 오히려 웃으며 물러섰다. “알았어. 우리 사이가 같이 밥도 먹어도 될 정도로 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설아, 혹시 나 때문에 안 가는 거야? 나 그냥 아까 정문에서 제하랑 우연히 만나서 잠깐 얘기한 거야. 오해하지 마.” 말하면서 뒤를 힐끗 봤는데 시선이 용제하에게 닿은 게 분명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진짜 그럴 필요 없어. 같은 반은 아니어도 한 학교라 자주 보게 될 텐데. 그리고 난 제하한테 딴 마음 없어.” 추다희는 허이설과 용제하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허이설은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귀국하자마자 용제하의 회사에 입사해 단둘이 출장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네 말이 맞아.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 진짜 그럴 필요 없지.” 허이설은 이 말만 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가버렸다. 추다희가 용제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희 요즘 왜 그래? 이설이 자꾸 널 피해 다니는 것 같아.” 용제하는 고개를 들어 캐리어를 끌고 멀어지는 허이설의 가느다란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건들거리는 태도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그윽한 눈빛으로 추다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방금 나한테 딴 마음이 없다고 했어?” 추다희가 멈칫하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 그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용제하가 떠나자 문상준과 엄형수가 뒤를 따랐다. 문상준이 말했다. “허이설 진짜 너 싫어하나 봐. 하하.” 엄형수가 덧붙였다. “그럼 오늘 아침엔 왜 직접 와서 교수님이 찾는다고 한 건데? 싫으면 문자로 보냈겠지.” “그건 또 그렇네.” 용제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너희랑 무슨 상관인데?” “재밌잖아.” “구경하려고 그러지.” 용제하가 아무 말이 없자 문상준이 또 말했다. “이 세상에 네 성격 받아줄 사람이 허이설 말고는 없어. 네가 뭐라 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쫓아다녔잖아.” 엄형수가 덧붙였다. “내가 너처럼 잘생겼다면 달콤한 말 몇 마디만 해도 상대를 사르르 녹일 수 있을 텐데.” “형수 오빠, 사르르 녹게 해봐, 그럼.” 용제하가 그를 쏘아보자 엄형수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문상준이 한마디 했다. “제하야, 상준 오빠라고 부르면 허이설이 진짜 널 버린 건지 알아봐 줄게.” 용제하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눈빛이 굳어버렸다. 문상준이 보려고 다가오자 용제하는 가차 없이 그를 밀쳤다. “여보세요.” 상대가 뭐라고 했는지 용제하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네. 알았어요.” 그는 짜증 섞인 태도로 전화를 끊고는 엄형수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 약속 취소야. 집에 좀 다녀와야겠어.” 문상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에 간다고? 세상에 이런 일이. 개학하고 지금까지 집 간다는 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아.” 용제하가 그를 흘겨봤다. “갔다가 금방 올 거야.”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길이 막힐 시간이라 지금 출발해야 했다. 용제하가 가방을 그들에게 건넸다. “가방 좀 가져다 놔줘.” “알았어.” 문상준이 그의 가방을 받아 들고는 무게를 가늠하며 물었다. “가방에 뭐 든 거야?” “노트북.” “안 가져가?” “저녁에 올 거야.” “세상에나. 너야말로 불효자 아니야? 어쩌다가 집에 가면서 하룻밤도 안 자고 온다고? 너희 집이 무슨 호랑이 굴이야?” 용제하가 학교 밖으로 걸어갔다. 추다희는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조금 전 용제하의 숨결이 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웠다. 추다희의 얼굴이 아직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릿속에 온갖 추측이 떠돌았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지?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래서 내가 딴 마음이 없다고 허이설한테 말했을 때 기분이 안 좋았던 거야?’ 생각 끝에 추다희는 멀리 떨어진 채로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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