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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이루나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의학계 종사자라 수술 같은 건 지겹도록 봐왔으니까. 하지만 막상 수술대 위에 누운 후 조금 차가운 수술방 안을 둘러보고 있으니 갑자기 이제야 생명 하나를 잃게 된다는 실감이 확 밀려오며 조금 두려워 났다. 이루나가 뻣뻣하게 굳은 채 주먹을 꽉 말고 있는 사이 차가운 기기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자궁 안을 긁어내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본 적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아플 줄은 몰랐다. 꼭 오장육부가 마구 뒤틀리고 또 짓눌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가득했고 볼은 눈물을 가득 차 있었다. 이루나가 무통 수술을 선택하지 않은 건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이 육체적인 고통이 누구로 인해 생긴 건지 똑똑히 뇌리에 새겨둬야 행여라도 나중에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을 테니까. 이루나는 눈을 감은 채 살점이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서이건과의 지난날을 떠올려보았다. 그러고는 수술대에 오른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헛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서이건은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적 없었다. 서이건과 그녀는 그저 육체적인 사랑만 했을 뿐이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두 사람이 한 모든 행동은 성인물 모음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술은 30분이 조금 넘어갈 때쯤 끝이 났다. 고작 30분이었을 뿐인데 이루나는 꼭 반세기 넘게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던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피로 인해 잔뜩 빨갛게 물든 쓰레기통이 보였다. 이루나는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의사가 긁어낸 건 사실 자궁 속 부산물이 아니라 그녀의 영혼과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그녀는 게임에서 졌다. 아쉬워할 것도 없이 그녀의 완패였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게임을 하는 상대가 그 누구도 아닌 서이건이었으니까. 실패하는 순간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예상했어야 했다. 수술실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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