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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예은은 장은주와 헤어진 후, 고급 찻집에 들러 명품 차 한 세트를 구매했다. 이로써 모든 선물 준비는 끝났고 서예은은 직접 포장까지 하며 성의를 더했다. 그녀는 조금씩 마음이 조여왔다. 필경 박씨 가문은 경성에서 알아주는 집안이었고 박시우의 엄마는 소문조차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서예은은 박시우의 엄마도 송미진처럼 눈이 높은 사람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갑자기 그녀는 외할머니를 뵙고 싶다던 박시우의 말이 떠올라 이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먼저 이금희한테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얘기도 없이 박시우를 데리고 오는 건 아무래도 예의는 아닌 듯했다. 마침, 식사 준비를 마친 이금희가 서예은을 불렀다. “예은아, 밥 먹으렴.” “네, 할머니.” 서예은은 손을 씻고 자리로 갔다. 식사 중, 이금희는 다시 주현진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예은아, 너랑 현진이 무슨 일 있어? 요즘 도통 연락을 안 하던데?” 서예은은 마음이 떨려왔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할머니, 저... 현진이와 헤어졌어요.” 이금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셨다. “아이고... 그랬구나. 인연이 아니라면 억지로 이어 나가도 안되는 거야.” 이금희는 비록 연세가 많았지만 현명한 사람이었다. 서예은이 주현진에게 해준 모든 노력을 이금희는 다 알고 있었고, 주현진이 정말 서예은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무시하지는 못했을 거로 생각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꽤 길었지만, 주현진이 이금희를 찾아온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금희는 주현진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지켜보기만 했었다. 이제 헤어졌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머니...” 서예은은 목이 메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 걱정시켜 드려서 미안해요.” 외할머니가 자신을 이렇게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도 못 했던 서예은은 가슴이 찡하면서도 따뜻해졌다. 이금희는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미안하긴. 할머니는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야. 애당초 주현진 그 자식은 너한테 진심이 아니었어. 헤어져서 다행이야. 우리 예은이가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사람인데. 꼭 더 나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고개를 숙인 서예은은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흐느끼며 말했다.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이제 더는 그럴 가치 없는 사람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이금희는 서예은의 눈물을 닦아 주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마, 예은아. 이제는 울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지내. 밥 먹자. 다 네가 좋아하는 반찬이야.” 서예은은 울음을 그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할머니, 저...할 얘기가 더 있어요.” 머뭇거리는 서예은의 모습에 이금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저... 다른 남자랑 결혼했어요.” 이금희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자기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서예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머니, 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어요. 첫눈에 반한 사람인데, 그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요.” 선의의 거짓말이었지만 서예은은 솔직히 박시우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금희는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예은아, 너 혹시 주현진에게 복수하려고 아무나 골라 결혼한 건 아니지? 그건 너무 경솔한 일이야.” “아니에요, 할머니. 저도 그 사람한테 호감이 있고, 그 사람도 저를 잘 대해 줘요. 내일 할머니를 뵙고 싶다고 했으니까 할머니께서 직접 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알겠죠?” 서예은은 박시우가 분명히 이금희의 마음에 들 거라고 믿었다. 이금희는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상대가 어른을 뵈러 온다는 말에 마음은 진심일 거로 생각했다. “그래.” 서예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 후, 서예은은 바로 박시우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음 날은 마침 주말이었고 점심때쯤 되자 박시우는 고급스러운 선물 세트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보기 드문 산해진미 건어물과 더불어 인삼, 산삼, 동충하초 등 노인에게 좋은 물건 들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박시우의 검은 눈동자는 흑요석처럼 반짝였고 서예은의 심장은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긴장돼? 손 줘봐.” 박시우는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서예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서예은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박시우한테서 전해지는 특유의 청량한 향기에 서예은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손 내밀라고.” 서예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자, 박시우도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꼭 맞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박시우가 무의식적으로 서예은의 손바닥을 살짝 문지르자, 그녀는 온몸에 전류라도 통하듯 심장이 더욱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귀밑까지 달아오른 서예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박시우 씨, 지금 뭐... 뭐하는 거예요?” 서예은이 손을 빼내려 하자, 박시우는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며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깊은 그의 눈빛은 집요할 정도로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움직이지 마. 줄 게 있어.” 그는 주머니에서 사탕 한 알을 꺼내 서예은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서예은은 멍하니 사탕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왜?” “기분이 안 좋거나 긴장될 때 사탕을 먹으면 마음이 안정돼.” 박시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눈빛은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치 그녀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손에서 전해지는 그의 온기에 서예은의 심장은 마치 폭풍에 휘말린 돛단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는 박시우 같은 남자가 왜 사탕을 가지고 다니는지 의문을 품을 여유조차 없었다. “고마워요.” 서예은은 사탕을 꼭 쥐고 말을 이었다. “들어와요. 할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선물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간 박시우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다정한 인상의 노인을 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박시우라고 합니다. 예은의 남편이에요.” 고개를 든 이금희는 박시우를 바라보며 속으로 깜짝 놀랐다. 훤칠한 키와 흠잡을 데 없는 용모, 당당하면서도 고귀한 품격이 느껴졌다. 박시우의 남다른 품격 앞에 주현진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공손한 그의 태도는 진심이 어려 보였다. “예은이가 말한 사람이 너구나?” 박시우의 모습에 이금희는 더욱 의심이 커졌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과연 우리 예은에게 진심일까?’ 이금희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박시우는 서예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 사실 전 오래전부터 예은이를 좋아했어요. 그땐 남자 친구가 있어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이제는 제가 예은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요. 허락해 주세요.” 박시우의 진지한 표정은 그들의 만남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진심이라고 믿었을 만큼 확고해 보였다. 이금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우야. 할머니도 널 보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예은이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여리단다. 정말로 예은이를 아낀다면 앞으로 그 마음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려무나.” 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할머니, 안심하세요. 정말 잘해 줄 거예요. 절대로 예은이가 상처받는 일 없도록 할게요.” 그는 진심으로 외할머니께 약속이라도 하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서예은은 슬쩍 박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묘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금희는 미소를 지으며 박시우의 손을 토닥였다. “그래, 시우야. 할머니도 널 믿는다. 자, 편히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푸짐한 밥상을 차려줄게.” 말을 마친 이금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외할머니의 미소에 서예은은 박시우가 인정받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서예은은 고개를 숙인 채 박시우를 향해 마음을 전했다. “뭐가? 우리 부부잖아. 방금 할머니한테 한 말들 전부 진심이야.” 박시우는 온화한 눈빛으로 서예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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