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5화
선혁은 짜증 섞인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던져두고 욕실로 향했다.
짧게 씻고 나온 그는 서재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뿜으며 게임을 켜니, 의현의 아이디 옆 회색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한 개비가 다 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초대 메시지가 올라왔지만, 선혁은 전부 거절했다.
계속해서 회색 불빛만 바라보며, 다시는 켜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두 사람이 함께했을 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적을 매복해 잡을 때마다 여우가 닭 훔친 듯 깔깔거리던 모습, 자신이 포위당하면 깃발 흔들 듯 달려와 걱정하지 말라며 소리치던 모습.
역전승을 거둘 땐, 당장이라도 화면을 뚫고 나와 안아버릴 기세로 흥분하던 모습 등등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의현은 늘 오버하고 솔직했으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웠다.
해성에서 마주했을 때, 고개를 들어 진지한 눈빛으로 한번 해보자고 말하던 순간도 생생했다.
선혁은 오늘 일 자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쩌면 의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더 깊이 빠지지 않을 테니까.
다른 여자와는 농담 반 장난 반으로 떠들 수 있어도, 의현과는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속마음 어딘가에서는 그녀가 상처받을까 두려웠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의현이 실망한 걸 보고, 처음에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이 아이도 날 좋아하는 마음을 접겠구나.’
그런데 막상 눈물이 고인 채 말하던 의현을 보니, 심장이 묘하게 저릿했다.
‘그게 양심의 가책일까? 아니면 그저 상처 준 게 미안해서일까?’
선혁은 의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남자에게 끌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이 상태가 편했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특히나 장거리 연애는 더더욱 싫었다.
선혁은 담배를 끝내고 다시 휴대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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