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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열이 내리기도 전에 큰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성아린은 의식이 멀쩡했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아직 정신이 몽롱한데 귓가에 배수혁이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다. “의사 불러와.”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지수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수혁아. 의사 선생님 부를 필요 없어. 우리 고향에서 쓰는 민간요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쓰면 바로 깨어날 거야. 나 믿고 일단 사람들부터 나가라고 해.” 성아린은 사람들이 하나둘 병실을 떠나는 게 느껴졌다. 이내 등에서 전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눈을 떠보니 지수아가 칼날로 등을 긋고 있었다. “아악.” 성아린은 너무 아파 힘껏 몸부림쳤지만 지수아가 움직이지 못하게 꾹 누르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요. 이 괄사는 고향에서 쓰는 민간요법인데 빨리 나으려면 참아야 해요.” “어느 지방에서... 괄사를 칼날로 해요...” 성아린은 너무 아파 식은땀이 날 지경이라 더 힘껏 몸부림 쳤다. 이건 괄사가 아니라 분명 능지처참이었다. 하여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모아 힘껏 밀쳐내는데 미처 반응하지 못한 지수아가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그때 배수혁이 안으로 달려왔다. “성아린.” 배수혁이 앞으로 다가가 지수아를 부축해 일으키더니 분노에 찬 표정으로 성아린을 노려봤다. “네가 먼저 수아 마음 상하게 했잖아. 수아가 너그럽게 용서하고 병을 봐주겠다는데 왜 그렇게 못되게 굴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성아린은 아파서 말이 나오지 않아 그저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지수아는 배수혁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됐어. 수혁아. 사모님도 너무 힘들어서 그러겠지... 나는 사모님 탓하고 싶지 않아...” “그건 안되지.” 배수혁이 그런 지수아를 마음 아파했다. “너 당장 사과해.” 배수혁이 성아린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성아린. 못 들었어? 수아에게 사과하라고.” 성아린이 이를 악물고 고집스럽게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배수혁은 성아린의 태도에 화가 나 문 앞에 선 보디가드에게 말했다. “사과하게 해.” 보디가드들이 대뜸 우르르 달려들어 성아린의 다리 관절을 걷어찼다. 성아린이 너무 아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털썩 꿇어앉자 한 보디가드가 거칠게 성아린의 목덜미를 잡아 억지로 지수아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쿵. 이마가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자 지수아가 소리를 질렀다. “안돼. 수혁아. 이건 너무 과해.” 배수혁도 보디가드가 이 정도로 철저하게 할 줄은 몰랐는지 복잡한 눈빛을 지었지만 이내 지수아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는 죄책감을 꾹꾹 눌러 담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오만함이 몸에 배어서 이래야 정신 차려. 그래야 앞으로 너 건드릴 엄두 못 내지. 이제 너도 그만 신경 쓰고 집에 들어가 쉬어. 여기는 의사가 지키고 있잖아.” 지수아가 고개를 저으며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이어갔다. “사모님 이렇게 된 거 내 잘못도 있잖아. 간호라도 서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배수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 일단 휴게실 가서 쉬고 있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 사다 줄게.” 배수혁이 지수아를 안고 병실을 나갔다. 그러는 동안 바닥에 꿇어앉은 채 이마가 빨갛게 부어오른 성아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린 성아린은 몸 곳곳에서 전해진 고통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두 사람이 오붓하게 병실을 나서는 뒤태가 성아린이 기억하는 16살의 배수혁과 겹쳤다가 이내 가루처럼 휘리릭 날아갔다.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들어와 상처를 처리해 줬다. 고통과 고열에 시달리던 성아린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각. 어렴풋이 잠이 들었던 성아린은 매캐한 연기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귓가에는 시끄러운 비명과 발소리가 들렸다. “불이야. 얼른 도망가세요.” 화들짝 놀란 성아린이 허약한 몸을 이끌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가보니 복도는 어느새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속으로 겁에 질린 사람들이 계단으로 달려갔다. 성아린은 얼른 절뚝거리며 그들과 함께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계단에서 똑같이 피신하는 지수아와 만나게 되었다. 혼란속에 발이 걸린 지수아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성아린의 팔을 잡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중심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굴렀다. 극심한 통증에 성아린은 눈앞이 까매졌고 다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겨우 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밀폐된 코너에 넘어져 있었고 유일한 출구는 떨어진 가연성 물질에 의해 막혀 있는 상태였다. 매캐한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불길도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수아는 발을 삐끗했는지 옆에서 작은 소리로 울기만 했다. 성아린은 어떻게든 탈출구를 막고 있는 잡동사니를 치우려 했지만 몸이 힘이 없어 옮겨지지 않았다. 그러다 매캐한 연기를 마신 성아린은 격렬하게 기침했고 의식도 점점 흐릿해졌다. 이러다 곧 죽겠다고 생각하는데 밖에서 구조대원의 목소리와 뼈에 새길 정도로 익숙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호자분, 불길이 너무 세서 위험합니다. 이렇게 들어가시면 안 돼요.” “이거 놔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안에 있다고요.” 배수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아린은 배수혁이 매캐한 연기와 거센 불길을 뚫고 걸어오는 걸 보았다. 배수혁은 다급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결국 지수아를 찾아내고 말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걸어간 배수혁은 지수아를 번쩍 안아 들더니 잃어버린 보물이라도 찾은 듯 걱정과 희열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아야 ,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있잖아.” 그러는 동안 배수혁의 눈빛은 한 번도 멀지 않은 곳에 간간이 목숨을 유지하는 성아린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그저 지수아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돌려 현장을 떠났다. 성아린은 매정한 그 뒤태를 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절망에 휩싸였다. 한편, 현장을 떠나기 전 지수아가 허약한 목소리로 배수혁의 귓가에 뭐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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