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나영재는 체념한 표정으로 과일을 안소희 앞으로 가져다 놓았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가 안소희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라고 귀띔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바로 한마디 했다. "소희가 먹기 민망해하는게 안보이냐? 어떻게 남편이라는 자가 그정도 눈치도 없어?" "난 주어온 자식이에요?" 나영재는 드디어 이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나 여사: "아니야." 나기훈: "신용카드 만드니까 선물로 주던데." 나영재: "......" "어머님, 아버님, 할아버지." 안소희는 말할 타이밍이 된 것 같아 얘기를 꺼냈다. "사실 저희가 오늘 여기에 온 건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에요." "임신한거야?" "몇 달이야?" "언제 생긴거야?" 나 여사와 할아버지가 번갈아 가면서 질문했다. 두 분의 눈에 담긴 희망과 기쁨을 본 안소희는 차마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 "저 영재 씨와 이혼하기로 했어요."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과일을 먹으려던 나 여사의 행동이 멈칫했고, 할아버지 얼굴의 웃음도 사라졌다. 나기훈마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이 사건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가히 알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이혼을 하려고 해?” 나 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이유는 저에게 있어요." 안소희는 알아서 책임을 짊어졌고,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제가 더 이상 영재 씨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 여사: "그럼 다행이야." 나 씨 할아버지도 시름을 놓았다. 나기훈의 시선이 나영재를 한번 훑었고, 알 수 없는 깊은 뜻이 있는 듯 했다. "그럼 저 놈을 그냥 버려." 할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너한테 회사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너 이제 NA그룹에 가서 회장 직을 맡아." 모든 사람이 보기에, 나영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큰 일이 아니였다. 감정은 천천히 생길 수 있고, 원칙적인 문제만 아니면 그들은 소희가 남아주기를 바랬다. "우리 농담하는거 아니에요." 줄곧 집에서 아무런 지위가 없던 나영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혼 절차가 이미 진행중이고, 월요일이면 이혼 신청 제기할거고, 숙려 기간만 지나면 이혼증이 나올거야." "누가 너더러 말하래?" 나 여사는 좀 화가 난 듯 했다. 나영재의 태도는 매우 분명했다. "이번에 집에 온 건 그냥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은 네가 이혼을 하려는거다? 소희가 이혼하려는게 아니고?" 나 씨 할아버지는 바로 중점을 캐치했다. "애시당초 소희랑 갑자기 결혼한다고 했던 것도 너고, 지금 이혼하려고 하는 것도 너야? 넌 정말 남자로서의 책임감이란게 있기는 한거야?" 나 여사: "애초에 왜 소희랑 결혼할려고 했어?" 나 씨 할아버지: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하지 마." 니기훈: "너 설마 소희를 그 여자 대신으로 생각한거냐?" 나 여사와 할아버지의 시선이 일제히 나기훈에게로 쏠렸고, 두 사람은 동시에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누구 대신?" 나영재: "......"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버지가 맞는 건가? "이혼은 제가 하자고 한거에요." 안소희는 더 말해봤자 실수만 더 늘어날 것 같아 상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영재 씨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진지한 말투와 진솔한 태도로 보아, 그들은 안소희가 농담하는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다들 둘 사이를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었으나, 안소희와 나영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을 보고는 그 둘 사이에 그들이 모르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다. 안소희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답을 기다렸다. "이렇게 하자." 나 여사가 안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는 정말 안소희가 마음에 들어서 "이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야. 네 부모님도 같이 모여서 얘기해보자. 그분들이 오기 불편하면 우리가 가도 되고."라고 말했다. "만나서 얘기하는게 맞지. 결혼한지 2년이나 되는데, 이 녀석이 소희 부모님 뵈러 간다는 얘기도 안하고." 할아버지는 정말 제대로 화가 났고, 나영재를 보면 볼수록 맘에 안들었다. "이번에 이혼하니 적어도 부모님 뵙고 정중하게 사과라도 해야지." 남의 집 귀한 딸을 꼬드겨놓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으니. 그가 만약 소희의 할아버지였다면, 아마 지팡이로 저 놈을 후려쳤을 것이다. "아니에요. 이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있어요." 안소희는 이 제의를 거절했다. 나 여사는 여전히 "소희야......"라고 하며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저는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안소희는 처음으로 가족 문제를 언급했고, "아빠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어요."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나영재는 순간 멈칫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는 가슴이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전에는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어?" “펑!”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그를 내리쳤다.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혼자서 안소희의 안쓰러운 상황을 상상했다. 아빠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 이후로 소희에 대해선 전혀 관심하지 않고, 근데 지금 소희가 또 이혼까지 하게 되다니.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겪는걸까? "할아버지!" 안소희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손을 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체면이라도 있는게냐?" 할아버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결혼한지 2년이나 되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다니!" 말을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정말로 저 녀석을 이 집에서 쫓아낼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소희야, 이렇게 하자." 나 여사는 이런 상황을 보고 당연하게 아들 놈이 안소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소희가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없어져 이혼할려고 하는 줄 알았다. "너 영재랑 1년만 더 살아봐. 만약 1년 뒤에도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땐 이 엄마가 네 편을 들어줄게." 안소희가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아니요......" "사실 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 여사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아주 심각했다. "전에는 너희들이 걱정할가봐 미처 말하지 못했어." 나기훈: "..." 안소희: “?” 나영재: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기훈 씨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의사 선생님이 내가 위암에 걸려, 이제 일년 반 정도밖에 더 살지 못한다고 했어." 나 여사는 기분이 아주 다운되었고, 전혀 기운이 없어보였다. "소희야, 영재에게 1년만 더 기회를 줘, 딱 1년만." 안소희는 그의 손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고, 그녀의 동공을 자세히 관찰했다. 안소희의 이런 행동에 나 여사는 어리둥절해졌다. "어머님의 병을 본 의사가 돌팔이 의사일지도 몰라요." 안소희는 어른의 체면을 생각해 돌려서 얘기했다. "어머님의 맥은 안정적이고 동공의 검은 자 가장자리 2분의 1 되는 위치에 검은 색 침전물로 이루어진 링이 없어요. 위가 아주 건강하세요." 나 여사는 아픈 척을 멈추고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소희야......"라고 불렀다. "이혼은 저와 영재 씨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더이상 설득하지 않으셔도 돼요." 안소희는 말하면서도 나 여사를 다독여줬다. "그동안 절 관심해주고 배려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나 여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 안소희를 놓치기 싫었다. 그녀는 계속 딸을 갖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아들만 둘을 낳게 되었다. 소희가 집안에 들어와서야, 그녀는 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정말 결정한거야?" 할아버지는 방금 전의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야윈 얼굴에는 티 내지 않은 아쉬움이 보였다. 안소희: "결정했어요." 그녀의 솔직하고 끈질긴 태도를 보고 모두가 하려던 말을 삼키고 말았다. 그들은 이 이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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