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한은별은 몇 시간이나 공들여 탕을 끓였다. 한은별이 쏟아 낸 다정함도, 조심스레 품었던 기대도, 서윤성이 조민아를 떠올리며 흘린 말 앞에서 한은별의 마음은 허무할 만큼 초라해졌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에 서윤성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바닥에 흩어진 탕 자국과, 눈물로 얼굴이 젖은 한은별이 눈에 들어왔다. 서윤성의 눈에 잠깐 미안함이 스쳤지만, 그보다 더 짙게 깔린 것은 숨이 막힐 만큼 깊은 무력감이었다.
조민아의 그림자는 서윤성의 생각 속에도, 숨 쉬는 틈마다, 어느새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서윤성이 아무리 버티고 제자리로 돌아가려 해도, 조민아는 쉽게 서윤성을 추억이라는 진흙탕으로 끌어당겼다.
서윤성은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힘이 없었다.
결국 서윤성은 지친 듯 눈을 감았다.
며칠 뒤,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이 서윤성을 몰아붙였다. 서윤성은 권한을 써서 병원 기록 보관실로 향했다.
서윤성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벌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서윤성은 산처럼 쌓인 기록들 속에서, 조민아가 곤장을 맞던 날의 상세 진료 기록을 찾아냈다.
당직 간호사가 얇은 서류봉투를 내밀었을 때, 서윤성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렸다.
서윤성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안에 든 진료 기록을 꺼냈다.
차가운 글자들이 담담하게 조민아가 받은 상처를 적고 있었다.
[환자 조민아: 등·둔부 광범위 연조직 심한 타박상, 피하 광범위 멍, 국소 혈종. 천미골 골절 의심.]
[처치 중 의식 명료. 마취 거부, 이를 악물고 견딤.]
[봉합 7바늘. 수술 후 절대 안정 권고(상처 벌어짐 주의).]
몇 줄뿐인데도, 달궈진 칼로 가슴을 찌르고 비트는 것처럼 아팠다.
서윤성은 숨이 거칠어졌다. 종이를 쥔 손이 떨려 글씨가 흔들릴 정도였다. 종이 가장자리는 서윤성이 힘을 주는 바람에 구겨져 갔다.
서윤성의 눈앞에는 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조금만 까져도 서윤성을 붙잡고 한참 투덜대던 조민아가, 피투성이가 된 등을 그대로 드러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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