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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진아는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파 최대한 빨리 모든 증명서를 가지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마지막 서랍을 연 그때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랍 안에 금융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CPA와 CFA 자격증을 포함한 각종 자격증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월스트리트에 입성할만한 자격증이지만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혀 있었다. ‘내가 남자나 쫓아다니는 무능한 쓰레기였다며?’ 그녀는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서둘러 훑어보고는 옷 몇 벌을 챙겨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도영이 방으로 들어왔다. “큰 누나, 또 집 나가려고? 제발 좀 그만해. 나 진짜 배고파 죽겠어.” 이도영이 이진아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캐리어를 덥석 낚아챘다. “계속 엄마 아빠랑 작은 누나한테 사과하지 않고 버티면 앞으로 다들 큰 누나 상대도 안 할 거야. 이번에는 또 며칠 나가 있으려고? 어제도 가출했었다며? 아침이 되자마자 기어들어 왔으면서 창피하지도 않아? 큰 누나 때문에 온 집안 분위기가 다 뒤숭숭해졌어.” 그러고는 캐리어를 옆으로 내팽개쳤다. 힘들게 챙겨 넣은 옷가지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왜 사람들이 다 작은 누나만 좋아하는지 알아? 작은 누나는 착하고 교양 있고 일도 잘해. 큰 누나가 작은 누나한테 한참 뒤처져서 엄마 아빠가 아직도 누나한테 회사 지분을 줄 생각이 없잖아. 제발 반성이라도 좀 해.” 옷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이진아는 이도영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 짝. 이도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볼을 움켜쥐었다. 뺨을 맞은 볼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날 때렸어?” 평소 가장 잘 참고 제멋대로 해도 가만히 있었던 큰 누나가 따귀를 때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도영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날 때렸어? 감히 나를? 다신 큰 누나랑 말도 섞지 않을 거야. 1년 동안 밥해주면 용서해줄지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 알아서 해. 지금 나가고 싶으면 당장 나가. 어차피 며칠 못 가서 또 울면서 돌아올 텐데.” 그러고는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이진아가 캐리어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문채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벌 받을 년. 감히 동생을 때려? 정말... 막무가내구나. 당장 밖에 나가 무릎 꿇지 못해? 우리가 화 풀릴 때까지 무릎 꿇고 있어. 안 그러면 다신 이 집에 발도 들일 생각 하지 마.” 이진아의 시선이 소파에 향했다. 달걀로 이도영의 볼을 마사지해주는 이수아의 두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이도영은 감동 어린 눈빛으로 이수아를 보다가 시선이 이진아에게 향했을 땐 콧방귀를 뀌었다. 말 못 할 아픔이 마음속에 밀려왔다. 하지만 정말 기억을 잃었기에 더는 예전처럼 비굴하게 가족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나도 딱히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발을 들이지 말라면 그렇게 할게요. 앞으로 당신들끼리 오순도순 잘 지내요.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문채원은 환청을 들은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빌어먹을 자식을 낳았을까. 그래. 졸업하고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는 네가 밖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두고 보겠어. 조만간 울면서 우리한테 빌게 될 거야.” 되돌아오는 건 문을 닫는 소리뿐이었다. 화가 난 문채원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컵을 든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었다. “애초에 쟤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이수아의 두 눈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스쳤지만 입으로는 걱정하는 척했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언니 항상 저랬잖아요. 모질게 말할수록 더 빨리 돌아올 거예요.” 이도영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이번에 날 때린 거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이진아는 캐리어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지금 손에 서다혜가 준 2백만 원밖에 없었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주거 문제였다. 서다혜가 들어와서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계속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변 자취방을 알아보았다. 최대한 강인 그룹과 가까운 집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강인 그룹이 금싸라기 땅에 위치해 있어 가장 싼 집도 한 달에 4백만 원이었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한 달 월세를 내는 것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먼 곳을 구하면 하루 교통비도 꽤 많이 나올 것이다. 고민하다가 근처에 무료 전동 스쿠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가까운 곳을 포기하고 낡은 아파트를 구했다. 전동 스쿠터를 타면 강인 그룹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이진아는 밖에 있는 전동 스쿠터를 잠금 해제하고 시험 삼아 길에서 타보기로 했다. 과거의 기억이 없어 탈 줄 아는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타는 걸 보면 꽤 쉬워 보였다. 무서워서 하도 느리게 간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경적을 울렸다. 이진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도로 가장자리에 붙어서 운전했다. 멀지 않은 고급 승용차 안, 강현우가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서류를 덮고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마침 길가에 멈춰 서 있는 이진아를 발견했다. 오늘 그녀는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햇빛 아래에서 피부가 투명하게 빛나 생기가 넘쳐 보였다. 스쿠터 운전이 서툴러 비틀거리다가 회전하려던 차와 부딪힐 뻔했다. 강현우가 멈칫하던 그때 운전석에서 주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분 이진아 씨 아닌가요?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죠? 전에는 6억이 안 되는 차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주지훈이 바로 강현우의 비서인데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백미러로 강현우를 쳐다보았다. “대표님, 저런 재수 없는 여자는 멀리하는 게 좋습니다. 제발 저런 여자한테 휘둘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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