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박승민은 눈앞의 채찍을 바라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이소율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승민 오빠, 언니랑 오빠랑 마음이 통했다는 거 알아. 그냥 넘어가... 어차피 곧 결혼할 텐데 그때가 되면 소율이도 오빠 곁을 떠나야 할 거야..”
“박승민, 잘 생각해. 남편으로서 위엄을 세우지 않으면 결혼한 후에...”
이태영은 말을 잇지 않았지만 이 한마디에 박승민은 채찍을 받아들었다.
그는 일어서서 강하연 뒤로 걸어갔다.
팔이 떨리고 있었지만 첫 번째 채찍은 결국 강하연의 등에 떨어졌다.
강하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콩알만 한 땀방울이 이마에서 떨어졌다.
“하연아, 날 원망하지 마.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야...”
박승민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손안의 채찍은 아까보다 훨씬 안정되었다.
순간, 거실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오직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강하연의 등에 떨어지는 채찍 소리만 들렸다.
그녀의 등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입안에서는 쇠 맛이 가득했다.
눈앞에는 이미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하연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는데 마치 물속에서 끌려 나온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 열 대의 채찍이 마침내 끝났다.
그 두 남자가 손을 놓자 강하연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연아!”
강하연을 일으켜 세우려 하던 박승민은 그녀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박승민, 은혜는 갚았어.”
박승민은 움직임이 멈춘 채 십 년 전을 떠올렸다.
그해, 강하연은 집을 나갔다가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될 뻔했다.
만약 박승민이 몰래 보호해 주다가 뛰쳐나와 인신매매범과 싸우지 않았다면 강하연은 아마 이미 끌려갔을 것이다.
그 결과, 강하연은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날부터 강하연은 그에게 막연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 이태영이 갑자기 말했다.
“박승민, 소율, 너희는 먼저 돌아가. 나는 강하연과 할 이야기가 좀 있어. 강하연도 결국 내 딸인데 내가 진짜 죽이기야 하겠어.”
이소율은 일어나 박승민의 팔짱을 끼고 혼이 나간 듯한 그를 데리고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후, 강하연은 힘겹게 땅에서 일어났다.
땀이 얼굴을 적셨지만 그녀의 굳건한 눈빛은 적시지 못했다.
이태영은 그녀를 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서씨 가문에서 대답이 왔는데 오일 뒤에 너를 데리러 온다고 하더구나. 강하연, 더는 말썽 일으키지 마.”
강하연은 말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별장을 빠져나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등 뒤에서 땀에 섞인 피가 떨어져 그녀의 의식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강하연은 홀로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했다.
다음 날 극장에서 공연해야 했기에 의사에게 약을 더 발라 달라고 하고 붕대를 한 겹 더 감았다.
이번 공연이 매우 중요한 만큼 강하연은 어떻게든 성공해야 했다.
극장에 도착한 강하연은 이소율이 커다란 장미꽃다발을 들고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율 씨, 이거 소율 씨 남자친구가 보낸 장미꽃이에요? 정말 예쁘네요.”
“네, 그러네요. 남자친구가 정말 로맨틱해요!”
이소율의 얼굴은 장미꽃보다 더 붉어진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장미꽃을 보낼 줄 몰랐어요. 아, 사실 만난 지 오래돼서 굳이 이럴 필요 없는데...”
고개를 든 이소율은 강하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재빨리 강하연에게 다가왔다.
“언니, 몸은 좀 어때? 오늘 힘들면 무리하지 마.”
강하연은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극장 리더가 들어와 손뼉을 치자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배우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제자리로 돌아온 강하연은 극장 리더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하연 씨, 오늘 이 공연에는 강하연 씨가 나가지 않기로 돼 있어요. 대타로 바꿨어요.”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요? 이 공연의 모든 리허설에 제가 참여했는데 왜 제가 못 나가요?”
“내가 지시한 거야.”
박승민이 두 눈에 걱정이 가득한 채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매우 신중하다고 생각하는 말투로 강하연에게 충고했다.
“하연아, 공연할 기회는 많아. 네 몸을 너무 몰아붙일 필요 없어. 어제 막... 오늘은 쉬는 게 좋겠어.”
강하연은 박승민이 어떤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때린 사람도 그였고, 인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는 것도 그였다.
“박승민, 이 공연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아?”
“이건 우리 엄마가 안무를 짠 거야. 우리 엄마가 남기신 유품이라고!”
강하연은 감정을 이렇게 겉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번에는 박승민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마침내 참지 못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박승민은 그저 침묵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는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강하연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박승민, 우리 끝났어...”
박승민이 강하연의 손을 꽉 잡았고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소율 양이 누구신가요?”
“저요.”
남자가 이소율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든 장미꽃을 빼앗았다.
“죄송해요, 꽃을 잘못 가져왔네요. 강하연 씨가 누구시죠?”
강하연은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강하연의 앞에 꽃을 내밀었다.
“강하연 씨, 도련님께서 보내신 꽃입니다.”
카드에는 단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서.]
강하연은 자기도 모르게 꽃을 받아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남자가 떠난 후, 그녀는 고개를 들다가 박승민의 분노한 시선과 마주쳤다.
“누구야? 너한테 꽃 보낸 사람이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