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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성하진의 눈가에 조롱이 가득했다. 마음이 식은 뒤 허찬우에 대한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았던 그녀는 차분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알겠어.” 성우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찬우 형이 얼마나 챙겨줬는데 고작 그 정도 감정밖에 없어? 누나,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정말 이상하게 변했어. 누나 때문에 충격받아서 민영 누나는 죽을 뻔했는데 걱정하는 말 한마디도 안 했잖아. 알겠다. 민영 누나가 가족들의 관심 다 빼앗아 가서 차라리 죽길 바라는 거지? 충분히 불쌍한 사람인데 왜 질투해? 대체 언제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된 거야?” 그 말에 성하진은 피식 웃음이 났다. 강민영이 정말로 약을 먹고 죽을 생각이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복용량을 조절해서 때마침 성씨 가문 사람들에게 들켰을까. 지난 몇 년 동안 강민영은 그런 교묘한 수단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조금씩 빼앗아 왔고 그녀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어차피 해명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지금처럼 가해자라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침묵조차 잘못인 건지. 집을 나서기 전 성우진의 목소리는 성하진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듯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거 알아? 교통사고 당한 날 나한테 수혈해 준 사람이 민영 누나가 아니라 누나이길 얼마나 바랐는지. 내 친누나면서 내가 제일 위험할 때 숨어버렸잖아. 난 누나가 미워.” 성우진은 문을 거칠게 닫으며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반년 전, 성우진은 음주 운전자가 차를 통제하지 못하고 들이받는 사고를 당해 많은 피를 흘려 중태에 빠졌다. 당시 병원의 혈액 재고량은 1400ml가 부족했는데 원래는 성종구와 성하진이 함께 수혈을 통해 그를 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성종구는 200ml만 뽑고 더는 못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의사에게 주사기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성하진은 800ml 뽑았을 때 이미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병상에 누워 있는 동생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의사가 1200ml의 피를 다 뽑아내도록 했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낯설고 오래된 병동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성종구는 새로 온 가난한 학생 강민영과 아들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수혈을 한 사람이 강민영이라고 했다. 퇴원 후 성하진은 힘겹게 몸을 이끌고 성우진에게 찾아가 해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뺨을 때리는 그의 손이었다. 그는 울부짖으면서 왜 자기가 가장 필요할 때 사라졌냐며 따졌고 강민영은 그에게 많은 피를 수혈해 주느라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성하진은 차갑게 식은 마음을 안고 병원에 가서 수혈 기록을 확인하면 누가 그를 구해줬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는 지금까지 확인한 적이 없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몸속 혈액의 20%가 강민영이 수혈해 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는 친누나가 이미 죽어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는 속 검은 짐승이라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모두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여겼다. 상관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 이젠 더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성하진은 소파에 앉았고 텅 빈 집에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창밖에 바람이 요란하게 부는 가운데 그녀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자신을 짓누를 것 같은 무겁고 답답한 공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집에 있는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원히 사라져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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