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결정
‘아무 사람이나 들이지 않는다고?’
‘누구?’
‘날 말하는 건가?’
웃기는 건 조준우는 그저 강경자 옆에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설마 여태껏 조씨 가문에 헌신한 걸 모르는 체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러자 나의 떨떠름한 모습을 본 조준우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심현주, 너 그런 표정 짓지 마. 너만 아니었으면 오늘 업무까지 팽개치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차가운 얼굴로 투덜거리는 조준우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살짝 놓였다.
보아하니 조준우와 3년 동안 지내면서 그에 대한 사랑도 많이 식어간 것 같았는데 어쩌면 나한테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내가 그러라고 시켰어? 어제 이혼 서류까지 직접 가져다 받쳤는데도 준우 씨가 사인하지 않았잖아.”
“현주야, 너 지금 모든 잘못을 우리한테 뒤집어씌우는데 너만 그런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 아들은 너랑 이혼할 생각도 없었어.”
“아이도 낳기 싫다, 이혼도 하기 싫다, 대체 그럼 저한테 원하는 게 뭔가요?”
나는 강경자에게 단호한 얼굴로 물었다.
여태껏 그녀한테만큼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했고 무리한 요구 조건이라도 다 들어줬다.
조준우는 사업하는 사람이라 전체 조씨 가문을 혼자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나도 원래 금융 쪽에서는 꽤 인재로 소문났었고 학교에서 조준우만큼이나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갑자기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서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거의 심씨 가문을 말아먹다시피 조씨 가문에 헌신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내가 그저 가정주부라고만 생각했지 심씨 가문이 사실 조씨 가문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강경자마저 내가 여태껏 어떤 도움을 줬는지 진작에 잊어버리고 이제는 그저 이 집의 도우미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현주야, 우리 준우가 왜 너랑 아이를 낳기 싫다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넌 하루 종일 집에서 우리 준우가 벌어다 주는 돈만 쓰는데, 나중에 아이까지 태어나면 무슨 돈으로 키울래?”
강경자의 물음에 내가 막 대꾸하려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리 엄마가 더는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실 두 모자가 집안에 들어서서부터 나는 부모님의 어두워진 얼굴을 발견했다. 내가 그들에게 눈빛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두 모자는 진작에 우리 부모님께 쫓겨났을 수도 있었다.
엄마가 거칠게 테이블을 한번 내리치자 강경자는 깜짝 놀랐다가 다시 눈살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사돈, 현주가 만약 우리 준우랑 이혼하게 되면 이 집에서는 이토록 훌륭한 사위를 잃게 되지만 우리 준우는 자기만의 삶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아이예요...”
......
나는 강경자가 이 정도로 뻔뻔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빠의 얼굴도 어느새 많이 어두워져 있었는데 강경자가 계속 말을 이을 틈도 없이 재빨리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하루빨리 이혼시킵시다.”
순간 강경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도 자기 아들이 이토록 훌륭하다는 걸 어필하면 분명 우리 집에서 사정하고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 의지가 강경하니 부모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조준우는 나랑 우리 부모님을 번갈아 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쳤는데 마치 우리 가족이 억지로 세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어 보여 그저 담담하게 물었다.
“어제 준 서류 다 봤지?”
“그리고 이건 내가 변호사한테도 의뢰한 내용들이니까 한번 봐봐.”
조준우는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테이블 위에 던져놨고 나는 다시 차분하게 그걸 주웠다.
사실 어제 내용이랑 비슷한데 한 가지 요구사항이 더 추가되었다.
앞으로 심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이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 매달리거나 방해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조진우는 아마 지금까지 우리 심씨 가문이 조씨 가문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두 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거들먹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부모님 뜻대로 진행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