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진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머리로 어떻게 이 남자 곁을 완전히 떠나고 이혼할지 생각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는데 민도준이 심수아를 데리고 돌아왔다.
친근하게 민도준의 팔짱을 끼고 있는 심수아는 얼굴에 약간 자만과 도발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민도준이 진나연을 바라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연아, 수아가 네 어머니 일 때문에 최근 계속 악몽을 꾸나 봐. 정신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점쟁이를 찾아봤는데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방법은... 수아와 동갑내기,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에게 영혼결혼식을 치러주면 된대.”
잠시 말을 멈춘 민도준은 순식간에 창백해진 진나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너야.”
고개를 번쩍 든 진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민도준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 승낙한 거야?”
진나연의 시뻘게진 눈과 절망이 가득한 눈빛을 본 민도준은 마음 한구석이 바늘에 찔린 듯 통증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망설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심수아가 민도준의 팔을 흔들며 버릇없이 말했다.
“도준 오빠, 오빠가 그랬잖아. 내가 무슨 요구를 하든 다 들어준다고. 그냥 작은 세레머니 같은 거 하는데 오빠 설마 약속을 어길 건 아니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민도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걱정하지 마. 그냥 네가 죽은 사람과 의식을 치르는 것뿐이야. 형식적인 거니까 네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나연아, 네가 좀... 참고 해줘.”
‘참고 해줘?’
온몸에 힘이 풀린 진나연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민도준이 저런 요구까지 승낙하다니. 심수아의 터무니없는 악몽 하나 때문에 자기 아내를 죽은 사람과 결혼시키겠다고?
엄청난 심적 고통에 진나연은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분을 억지로 눌러 삼키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민도준, 나 지금은 네 합법적인 아내야.”
고개를 들어 민도준을 바라보는 진나연은 눈빛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나보고 죽은 사람과 영혼결혼식을 치르라고? 그럼 우리 먼저 이혼부터 해야겠네. 그래야만 이 연극이 완벽해지는 거 아니야?”
표정이 확 변한 민도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나 절대 너와 이혼하지 않을 거야!”
심수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곧바로 끼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어려워? 먼저 이혼 수속을 밟으면 되잖아. 진나연 쪽 영혼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다시 결혼하면 되잖아?”
심수아는 민도준을 향해 몸을 돌린 뒤 애교를 부리며 안쓰러운 척했다. 그러더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도준 오빠, 내 머리 너무 아파. 어젯밤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
결국 심수아의 말에 설득당한 민도준은 변호사더러 이혼 합의서를 출력하라고 한 뒤 심수아가 보는 앞에서 진나연과 함께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펜 끝이 종이를 가르는 순간 진나연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후 민도준과 심수아는 진나연을 데리고 교외의 한적한 묘지로 갔다.
음산한 바람이 부는 이곳, 검은 관 하나가 파헤쳐진 무덤 옆에 놓여 있었다.
의식은 황당하고도 소름 끼쳤다.
진나연은 마치 인형처럼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관 속의 죽은 이의 위패와 함께 ‘결혼식’을 치렀다.
그녀는 악몽 같은 모든 것이 이제야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수아가 웃으며 더욱 악랄한 요구를 했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신부가 신혼 방에 하룻밤 있어야만 내 악몽이 완전히 풀린다고 했어. 그러니까 진나연, 너도 이 관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해.”
진나연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민도준을 바라봤지만 민도준은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조금 지나치다고 느낀 듯했지만 심수아의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결심을 한 듯 손을 저었다.
곧바로 누군가 다가오더니 진나연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억지로 들어 올려 차갑고 썩은 냄새가 나는 관 속에 집어넣었다.
“안 돼! 이거 놔! 놓으라고! 민도준!”
진나연은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쿵!
무거운 관 뚜껑이 닫히며 마지막 빛이 차단되었다. 세상은 완전한 어둠과 죽음 같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내 관 밖에서 심수아의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다. 신혼 방에 ‘생기’가 필요하니 신부에게 짝을 좀 붙여줘야겠네.”
관 위쪽 어딘가가 살짝 열린 듯하더니 차갑고 미끄러운 무언가가 하나둘 던져지듯 그녀의 몸 위로, 다리 위로 떨어졌다...
뱀이었다.
공포에 질려 몸이 굳어버린 진나연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심수아의 악독한 목소리가 관 너머로 울려 퍼지더니 경고하듯 말했다.
“진나연, 가만히 있어! 도망가거나 도준 오빠에게 말하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영혼결혼식을 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