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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아빠...” 문 앞에서 서이안의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현우가 소리를 따라 돌아보니 서이안이 잠옷을 입고 맨발로 문 앞에 서서 아끼는 인형을 안고 있었다. “이리 와.” 서이안은 눈을 비비며 그에게로 걸어왔고 서현우는 아이를 품에 앉혔다. 서이안은 이제야 주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이 방은 항상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처음이었다. “아빠...” 서이안은 서현우의 허리를 감싸며 두려움에 떨었다. 또다시 꿈에서 그 여자를 봤다. 꿈속에서 여자는 그를 안아주었고 그토록 따뜻한 품이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여자는 부드럽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안아, 우리 이안이... 엄마야...” 꿈속에서 그 여자의 얼굴을 명확히 볼 수 없었지만 그 따뜻한 품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그리웠다. 문득 윤소율이 떠올랐다. 그녀의 품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안 잘 거야?” 서현우가 아이의 콧등을 살짝 건드렸다. “아빠랑 자고 싶어요.” “응? 이안이는 늘 혼자 잤잖아.” 서현우는 다소 놀랐다. “아빠랑 있을래요.” 말하며 아이는 작게 고개를 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현우의 얼굴을 잡더니 그의 턱에 쪽 입을 맞추었다. 수줍은 입맞춤에는 부탁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들에 대해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서현우는 특별한 부탁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먼저 입 맞추는 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역시나 서이안이 물었다. “그 아줌마 또 만날 수 있어요?” ‘윤소율? 이 꼬맹이가 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네.’ “왜 만나고 싶은데?” “좋아요.” 윤소율을 언급하자 서이안의 눈동자가 별을 박은 듯 반짝거렸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예쁜 아줌마였어요.” “엄마보다 더 좋아?” 서이안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난 엄마 싫어요.” 모두가 임채은이 엄마라고 말하지만 예민한 아이는 본능적으로 임채은을 싫어했다. 게다가 아이는 모두가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임채은이 절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 겨우 다섯살이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두뇌를 지닌 서이안은 우연히 임채은의 검사 결과를 보게 되었다. 임채은은 선천적으로 난소가 없었다. 서이안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는 선천적으로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의 엄마가 따로 있는 것이다! 몇번이고 꿈에서 같은 여자를 봤다. 그토록 다정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 공항에서 윤소율을 만나자마자 아이는 확신했다. 이 여자가 바로 그의 꿈에 수없이 등장한 그 따뜻한 여자라는 것을. “왜 엄마를 싫어해?” 서이안이 문득 되물었다. “아빠는 엄마가 좋아요?” “좋아.” 서이안은 믿지 않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요? 근데 왜 아빠의 눈동자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서현우는 침묵했다. 다섯살짜리 아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좋아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임채은에 대한 감정은 아마도 책임감이거나 어릴 적 했던 약속 때문일 수도 있었다.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그였으니까. 게다가 임채은은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5년 전, 임채안은 이안을 안은 채 수줍으면서도 감동한 듯 그에게 말했다. “현우 오빠, 우리 아기야. 아기에게 이름 지어줄 수 있어?” 임채은이 해외에서 치료받던 시절 의사는 한때 그녀가 2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서현우가 윤서린을 아내로 맞이한 이유였다. 윤서린과 임채은은 혈액형이 맞아 그녀가 임신하면 제대혈에서 추출한 조혈모세포로 임채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윤서린이 임신 8개월 됐을 때 서현우는 그녀의 제대혈을 추출한 다음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학교수와 최고의 의사들을 고용해 임채은의 목숨을 구했다. 1년간의 요양 끝에 그녀는 완전히 회복되어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게 되었다. 귀국할 때 그녀는 한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말로는 이번 생에 아내가 될 수 없을까 봐 몰래 시험관 수술을 해 선물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 선물이 서이안이었다. 서현우는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을 느꼈다. 이제 막 윤서린과 배 속의 두 아이를 잃은 직후였으니까... 임채은은 아이를 안은 채 그에게 아이를 안아보라고 애원했다. 아빠로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도 아빠가 된 느낌이나 기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서이안이 크면서 앉고 기는 법을 배우며 처음으로 뱉은 말이 ‘아빠’였을 때 그의 부성애도 싹트기 시작했다. 서이안에게는 사랑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느꼈다. 그것 때문에 임채은에게 책임을 지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서이안의 친엄마니까. ... [윤소율 씨, 사람 찾았습니다.] 윤소율은 카톡으로 주소가 적힌 메시지를 받고는 기사에게 전달했다. 반 시간 후, 차는 한 아파트 단지 아래에 멈췄다. 이 지역은 20세기에 지어진 좁은 아파트 단지였고 경진에서 유명한 빈민가였다. 좁고 어두운 복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이미 이사 갔고 현재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지 출신 노동자나 빈곤층,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윤소율은 낡은 문 앞에 서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가요!” 문 안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문이 열리자 문틈으로 예쁜 얼굴이 반쯤 보였다. “정아야.” 윤소율이 미소를 짓자 노정아는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윤...윤소율!” 무려 대스타 윤소율이었다. 할리우드의 보물!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노정아는 눈을 비볐다. 몸값이 수백억인 스타가 자기 집 문 앞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윤소율은 그녀의 뒤쪽 틈새를 통해 집 안의 낡은 가구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정아야, 들어갈 수 있을까?” 노정아는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프로그램 촬영 중인가요?” 연예인이 일반인 가정을 방문하는 그런 프로그램 말이다. 윤소율은 뒤에 있던 운전기사와 경호원에게 말했다. “문밖에서 기다려요.” “네.” 노정아가 윤소율을 집안으로 안내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윤소율이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아야, 나 서린이야.” “...” 노정아는 한참 동안 반응하지 못했다. “서린이?” “윤서린.” 윤소율은 웃으며 말했다. “날 못 알아보는구나.” “농담하는 거 아니지?” 순식간에 노정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린이는 이미 죽었어...” 게다가 기억 속 윤서린은 얼굴에 큰 반점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을까. “정아야, 우린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내가 정말 서린이야. 못 믿겠으면...” 윤소율이 노정아의 귀에 속삭였다. “네 등 뒤에 난 채찍 흉터는 나 대신 막아주다가 생긴 거잖아. 나 다 기억해.” 노정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가렸다. 그녀의 등에는 정말 상처가 있었고 이는 그녀와 윤서린 사이의 비밀이었다. “너... 너 정말 서린이야?” 노정아는 감격에 차서 울음을 터뜨렸다. “너는... 5년 전에...” “나는 죽지 않았어. 아직 살아있어!” “세상에,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니지?” 노정아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서린아, 네가 살아있어. 죽지 않았어...” ... 노정아의 어머니는 서씨 가문의 가정부였고 윤서린이 어릴 적 양부모 외에 유일하게 진심으로 그녀를 돌봐준 사람이었다. 노정아와 윤서린은 서씨 가문에서 함께 자랐다. 당시 김영숙이 옥팔찌를 잃어버렸을 때 모든 사람이 윤서린이 훔쳤다고 비난했지만 노정아가 그녀를 대신해 매질을 맞았다. “5년 전 엄마가 병에 걸렸을 때 김영숙이 우리 모녀를 내쫓았어. 엄마가 편찮으니까 곁에서 돌보느라 나가서 돈을 벌 수가 없었어.” 윤소율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불안해 보이는 노봉희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줌마,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제가 아줌마랑 정아 챙길게요.” 노봉희는 눈물을 훔치며 감격했다. “5년 동안 어디 갔었어! 서씨 가문에선... 네가 죽었다던데.” “그건 내가 아니에요. 기남준이 저를 해외로 데려갔어요.” “네가 죽지 않았다면 장례식 그 사람은...” “이름은 모르지만 아마 떠돌이 고아일 거예요. 당시 불길 속에서 그 여자가 너를 구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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