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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남은 한 달 동안 나는 임라 그룹을 관리하는 동시에 물밑으로 인수인계 작업을 진행했다. 임태경이 딸이 업무에 적응하고 회사 운영을 익혀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었다. 인수인계를 받고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는 오로지 임가을에게 달렸다. 나는 업무를 제외하고 향후의 계획들도 하나씩 준비해나갔다. 임라 그룹 수출입 관련 인맥과 자원은 이미 충분히 쌓여 있었다. 운송 루트만 확보하면 직접 자금을 모아 무역 회사를 차리는 것도 가능했다. 임씨 가문이 아니어도 투자자는 많았다. 사업 모델의 수익성과 완성도만 보장한다면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널렸다. “실장님, 이건 지난달 승인 서류입니다. 회사 최대 협력사인 존하우스에서 제시한 조건을 대표님께서 거절했어요.” 해외 부서 담당자가 상황을 보고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존하우스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제시한 건 아니잖아요? 왜 거절했대요?” 이내 서류를 건네받아 고개를 숙이고 내용을 살폈다. 존하우스에서 제시한 조건은 청해 항로를 이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납기일도 더 빨라지고 매월 처리 가능한 운송 물량도 늘어날 수 있다. 청해 항로 개척은 애초에 임라 그룹이 추진하려던 일이었다. 운송량이 늘어나는 건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로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실장님, 존앤컴퍼니 측에 뭐라고 답변할까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임가을의 의도를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까 생각했지만 이제 계약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라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진짜 대표는 임가을이지 않은가. “그냥 서류에 적힌 대로 회신하세요.” 그리고 문서를 담당자에게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되면 고객사를 하나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청해 항로를 보유한 무역 회사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대표님 뜻대로 하세요.” “네.” 담당자는 더는 반박하지 않고 돌아섰다. 크게 실망한 눈치였으나 이게 진짜 대표의 결정인 걸 어떡하겠는가? ... 나는 사무실에서 날이 깜깜해질 때까지 일했다. 인수인계가 뒤죽박죽 했지만 복잡한 업무를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내 몫이었다. 잠깐 숨을 돌리는 틈을 타서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한입 먹자마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정윤재, 10분 줄 테니까 당장 튀어와!” 임가을의 화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술 마신 거야?” “오지랖은! 내 말 안 들려? 이제 9분 남았다.” 말이 끝나자 전화가 끊겼다. 화면이 번쩍 켜지더니 위치 정보가 전송되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먹다 만 컵라면을 버리고 차에 올라타 내비게이션을 따라갔다. 위치는 시내 중심가의 한 클럽이다. 또 이런 곳이라니. 임가을은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있었다. 3년 전 사고가 날 뻔한 것도 술 때문이지만 변한 게 없었다. 아마도 재벌가의 막내딸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15분 후, 나는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문을 열자 화려한 대형 룸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모두 대학 동기들이다. 심지어 몇 명은 같은 학과 친구들이기도 했다. 오늘이 동창회였나? 한창 의아해하는 사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왜 이렇게 고분고분해? 진짜 부르면 바로 오네?” “하하하, 한때 우리 학교 수재 아니야?” “그뿐이겠어? 공부는 물론 잘생긴 외모로도 유명했잖아. 당시 정윤재를 짝사랑한 여학생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어이, 정윤재, 여기 앉아.”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대학교 때 과대표인 하지우였다. 사람 자체는 좀 속물이지만 매 학기 장학금을 타던 나한테는 늘 공손했다. “흥, 우리랑 겸상할 자격이 어디 있다고.” 임가을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옆에 서 있어.” 나는 울컥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순순히 대답했다. “네.” 룸 안에서 마치 종업원처럼 임가을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앞에서 알짱거리지 마. 눈에 거슬리니까.” 임가을이 버럭 호통을 쳤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순간 룸 안에 정적이 찾아왔고,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들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고, 조롱이 섞인 시선으로 이죽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말이 유행했었지.” 하지우가 문득 입을 열었다. “공부를 잘해봤자 결국은 남 밑에서 일하는 신세라더니. 우리 임 대표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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