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차는 윤라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아래에 도착해서야 멈춰섰다. 유지성이 먼저 내려 조수석 쪽으로 돌아와 윤라희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유지성의 시선 끝에는 어둠 속에 조용히 숨어 있던 익숙한 리무진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언제라도 덮칠 수 있을 것처럼 심연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맹수 같아 보였다. 유지성의 눈매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곧이어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냉소가 번졌다. 그는 몸을 살짝 숙이더니 윤라희의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조심해. 머리 안 부딪치게.” 겨우 한 발 앞으로 내딛은 윤라희는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참나, 나 어린 애 아니거든.” 유지성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바로 신사의 매너라는 거야, 누나. 나한테도 기회를 좀 주라.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을 때, 챙겨줄 연습 정도는 해야 하잖아.”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윤라희가 반응할 새도 없이 곧장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여자친구 가방을 들어주는 게 제대로 된 남자친구의 기본 소양이래. 미리 이런 체험을 좀 해봐야 나도 경험치가 쌓이는 거 아니겠어?” 가방을 되찾으려던 윤라희는 유지성의 말에 멈칫하며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그럼 어디 한 번 열심히 ㅇ녀습해 봐. 언젠가는 너도 나한테 올케 될 사람 데리고 와야 할 테니까.” “좋지. 분명 누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으로 골라서 데려올게.” 유지성은 말을 마친 후, 가방 지퍼를 열어 안을 뒤적이며 물었다. “열쇠는 어디 있어?” “맨 바깥쪽 칸에 있어...” 두 사람은 함께 웃고 떠들며 단지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주성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이마로 흐르는 식은땀을 몰래 훔쳤다. 문을 열어주는 것도, 가방을 들어주는 것도, 심지어 여자의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적이는 것까지 거슬리지 않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나란히 걸으며 다정하게 얘기를 주